삶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

'삶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 클리셰는 영화 탄생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아마 문명 탄생부터 있었겠지만 본격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영웅화되기 시작한 낭만주의 시대부터입니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한 예술가가 있는데 그는 살아가면서 계속 거창한 삶의 파도와 충돌하고 그때마다 거기에 영향을 받은 걸작을 내놓는다는 것이죠. :-)

이런 예는 스튜디오 시대의 헐리웃이 만들어낸 예술가 전기 영화에서 특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에서 실연한 슈베르트는 쓰다 만 교향곡 악보를 내던지며 장엄하게 외칩니다. "내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 한 이 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예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든 요소들은 그가 바이올라와 연애를 하면서 얻어낸 것들입니다.

별로 이상한 상상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걸작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삶 역시 그처럼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이 그 사람 삶의 일부라는 건 분명하므로 당연히 삶과 작품과의 상호연관은 있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왜 이것이 문제가 될까요? 그건 대부분의 스테레오 타입들처럼 이런 예술가상들도 현실을 '모두'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건전지처럼 안에 쓱 넣어주면 후다닥 걸작을 완성해내는 예술가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전혀 없을지도 모르죠. "나는 갑작스런 영감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라고 주장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네들의 주장이 모조리 허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5분 짜리 짧은 노래 정도야 영감만으로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웬만한 무게가 있는 작품들은 영감 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로맨틱한 전기 영화 감독들이 툭하면 잡아다 쓰는 베토벤 같은 양반을 한 번 볼까요? 베토벤의 작품들을 걸작으로 만드는 것은 멜러디 같은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완벽한 구성미입니다. 구조를 위해 개별 요소들을 끼우고 맞추고 조립하고 균형을 잡아내는 작업은 영감과 전혀 상관없는, 사실 거의 수학적인 작업입니다. 5번 교향곡을 쓸 때 베토벤은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 어쩌구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기엔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작업이 너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보는 재미가 없어요. 영감을 받고 후닥닥 써갈기는 예술가로는 영화가 됩니다. 극적인 장면도 많고 장면 전환도 빠르지요. 하지만 베토벤과 같은 진짜 예술가의 진짜 삶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시계공의 작업장을 구경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신선하게 되살리느냐입니다. 관객들이 가진 예술가 상을 그대로 따르면서 클리셰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꽤 성공한 편이지만 그 역시 완벽했다고는 못하겠어요.)

작업 자체가 시각적인 예술이라면 클리셰는 접어두고 사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이작 미즈라히의 콜렉션 작업을 다룬 [언집트]는 그 대표적인 예죠. 연극이나 영화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부딪히며 작업하는 예술 역시 나름대로 진지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다큐멘터리라면 개인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극영화에서는 힘이 듭니다. 방법을 찾아내기가 힘든 거죠. 당연히 각본가들은 쉬운 길로 가려고 하고 결국 '삶에서 영감을 받는 예술가' 루틴은 희극적인 클리셰가 됩니다. (99/03/09)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