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

멜 브룩스의 아름다운 패러디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있노라면 실험실을 장식하는 기기가 아주 눈에 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단순한 기시감 이상입니다. 바로 제임스 웨일의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에서 쓰였던 실험 기기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

브룩스야 원작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런 수법을 사용했지만, 꼭 그런 적극적인 오마쥬가 아니더라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도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장치입니다. 구식 SF 영화에서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묘사할 때마다 꼭 나왔으니까요. 과학자의 전공이 무엇이건, 이상한 색깔의 액체가 보골보골 끓고 있는 플라스크가 반드시 눈에 들어오곤 했죠. 하얀 약사 가운을 입은 영화 속의 과학자들의 주 임무는 한쪽 실험관에서 다른 실험관으로 액체를 옮기면서 가끔 폭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플라스크에서 정말 거의 모든 것들을 뽑아냈습니다. 인조 인간, 로봇, 돌연변이 괴물, 종말 기계, 투명인간 약... 이 모든 것들이 이상한 색깔의 액체를 이리 저리 옮긴 결과 나왔다는 게 경이롭지 않습니까?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은 당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자의 상이 고정된 결과입니다. 당시 일반인들이 과학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던 곳은 학교 실험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박한 장비들 중 그래도 가장 미묘하게 보였던 것은 화학 실험 도구였지요. 헐리웃의 세트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것은 바로 고등학교 화학 실험실의 헐리웃 버전이었던 셈입니다.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 이후, 이 이미지는 헐리웃 과학자의 상징으로 고정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론 물리학자와 같이 종이와 연필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방에도 이런 것들이 놓여 있곤 했죠.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보고 있는 것은 [원더우먼] 1시즌의 에피소드인데,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지진학자의 방에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실험도구가 이상한 액체를 보골보골 끓이고 있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은 더이상 진지하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요새는 일반 관객들도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늘 이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요새는 컴퓨터라는 것이 있어서 플라스크 없이도 작업을 훨씬 신나게 시각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 코미디에서는 여전히 요긴하게 쓰입니다. 클리셰의 나이로 계산하면 중년에 접어든 셈이죠. (99/04/0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