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쌍둥이

쌍둥이는 언제나 사람들을 매료시킨 소재였습니다. 쌍둥이 둘을 뒤섞어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코미디는 로마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두번이나 이 트릭으로 코미디를 만들었고요. [실수연발]과 [십이야]가 그 작품들입니다. 현대로 가면 에리히 케스트너의 [두 로테]와 같은 동화가 있지요(이 작품은 헐리웃에서 [Parent Trap]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영화화 되었습니다.)

이 코미디 트릭이 약간 뒤틀린 것이 '사악한 쌍둥이'입니다. 설정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쌍둥이 한 쌍이 있는데, 한 쪽은 극단적으로 착하고 다른 한쪽은 사악함 그 자체입니다. 사악한 쌍둥이는 착한 쪽 행세를 하며 착한 쪽의 재산이나 애인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베티 데이비스가 [A Stolen Life (국내 방영 제목이 생각 안나는군요. 알고 있는 분들은 연락 바랍니다)]와 [Dead Ringer]에서 이런 역들을 그럴싸하게 해낸 적 있습니다. 조금 덜 과격했지만 앤 헤이시를 스타로 만든 역도 [Another World]의 쌍둥이 역이었지요.

설정은 극적입니다만 그만큼 지독하게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트릭은 시작부터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를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이 트릭을 이용한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싸구려로 나가려고 작정한 장르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막나가는 장르, 특히 미국 소프 오페라에서는 이처럼 좋은 게 없었습니다. 사악한 쌍둥이의 센세이셔널리즘이 이 장르에 딱 들어맞았던 거예요. [Another World]도 그런 소프 오페라 중 하나였습니다.

요새 이 클리셰는 소프 오페라에서보다 소프 오페라에 대한 농담에서 더 자주 쓰이는 것 같습니다. [프렌즈]에서 조이가 자기 스토커를 쫓아내기 위해 자신의 '사악한 쌍둥이' 노릇을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악한 쌍둥이는 기억 상실과 함께 소프 오페라식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99/04/0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