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연설

아쟁쿠르. 영국군은 막강한 프랑스 군의 위세에 질려 움츠러들대로 움츠러져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핼 왕자... 아니 헨리 5세가 군인들 앞에 나서서 장엄한 연설을 하죠. 그 연설 하나에 배터리 바니처럼 용맹해진 영국군은 전쟁터로 달려가 프랑스 군인들을 개박살냅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주인공의 장엄한 연설에 군중들이 힘을 얻는 장면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지금 예를 든 것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지만 결코 처음의 예는 아니고 마지막 예도 아닙니다.

웅변은 언제나 좋은 예술 소재였습니다. 요새도 웅변술은 중요하지만 멀티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더욱 중요했지요. 웅변술이 당시 사람들의 예술에 녹아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죠.

하지만 이런 장면이 유달리 자주 튀어나와 결국 사람들을 질리게 한 때가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헐리웃이 바로 그랬습니다.

1930년대는 얼핏보기에도 험악한 시대였습니다. 대공황 직후의 사회불안, 파시즘, 스페인 내란... 그리고 헐리웃은 언제나처럼 여기서 소재를 찾아냈습니다. 30, 40년대에 나왔던 그 많은 헐리웃 사회극은 그 결과였습니다. 이런 소재는 특히 워너 브라더즈의 전문이었지요.

자유, 조국애, 평등과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니, 당연히 이 주제는 그에 걸맞게 장엄하고 엄숙하게 표현되어야 했습니다. 수많은 재능있는 작가들이 '감동적인 연설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들에서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존 도를 만나라], [도시로 간 디즈 씨], [멋진 인생]... 이 작품들은 모두 수많은 대중 연설 장면과 감동적인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카프라 영화의 대사들은 아주 훌륭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 영화들이 카프라의 영화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보다 운이 좋지 못했습니다. 요새 이런 영화들의 장면을 보면 감동적이기는 커녕 우스꽝스럽습니다. 같은 장면들이 너무 많이 되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런 장면들이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나치게 세련되고 감동을 쥐어 짜내려 기를 쓰는 헐리웃 식 연설들은 극중인물의 캐릭터나 상황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독립적인 괴물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연설들은 영화의 사실주의가 강화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요새도 연설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보다 사실성과 캐릭터와의 일치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예전 영화들에서 느꼈던 거부감은 들지 않습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각본을 쓴 [패튼]은 그 좋은 예입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감동적인 연설'의 트릭은 아직도 자주 쓰이는 무기입니다. 갑자기 엄숙한 음악이 나오자 주인공이 심각한 표정으로 뚱딴지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코미디 트릭은 정말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끔 옛날의 '감동적 연설'의 방법을 소박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영화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플레전트빌]의 법정 장면은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만큼이나 복고적입니다. 하지만 그건 작가인 게리 로스가 연설문 작가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99/04/2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