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한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

관객 모두가 벌리츠 박사처럼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모국어밖에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 하나의 언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합니다. 노력해서 한 두 가지 외국어를 더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한 두 가지'도 늘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영화의 대사는 모국어인 한 가지 언어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한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그렇게 어려운 요구는 아니죠. 그러나 언제나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를 오가며 활약하는 맥가이버와 같은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하죠?

영어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넓은 범위에서 쓰는 언어이므로 영어권 영화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혜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는 하거든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주인공이 액션을 진행시키려면 다양한 정보를 독자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영어가 유창한 외국인이라도 동료나 친구와 말할 때도 영어로 말하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통역을 넣으면 주인공의 위신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많은 옛날 영화들은 이런 상황을 무시했습니다. 헐리웃 영화 속의 외국인들은 외국어로 말을 하는 대신 외국어 사투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비교적 최근 작품인 [맥가이버] 시리즈에서도 그렇죠. 맥가이버는 전세계를 오가며 악당들과 싸우지만 언어 장벽과 충돌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여기에 약간 재치있는 트릭을 입힌 영화도 있었습니다. 스탠리 크레이머의 [뉘른베르크 재판]이 그 예입니다. 영화는 처음에 언어 장벽의 리얼리티를 모두 살립니다. 그러다 갑자기 카메라가 한 번 흔들리더니 독일어들이 신비스럽게 영어로 바뀝니다. 이 방법은 잭 라이언 시리즈인 [붉은 시월]과 [긴급 명령]에서도 사용되었지요.

그러나 외국어의 리얼리티는 점점 중요해졌습니다. [맥가이버]같은 텔레비전 시리즈라면 사람들이 대충 넘어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극 영화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죠. 이제 외국어 사투리를 외국어라고 우기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트릭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트릭들 모두가 조금씩 인위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질리기 마련이었죠.

[카바레]에서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독일인 캐릭터 하나는 자기가 영어 실습 시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자고 고집합니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먹히는 수법이었죠. 하지만 이 캐릭터는 영어권 친구들이 없는 동안에도 우아한 독일어 사투리로 계속 영어만 합니다.

미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영어를 강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에선가, "우린 이제 미국에 왔으니 영어로만 이야기 하자."라고 기특하게 주장하던 이민 가족이 나온 게 생각나는군요.

[피스메이커]와 같은 영화에서는 영어의 국제어로서의 가치를 슬쩍 부풀립니다. 테러리스트가 서툰 러시아 어로 말하려고 하자 러시아인 악당은 영어로 튕깁니다. "자네들 러시아 어는 형편없군. 차라리 영어로 하게."

그러나 이 모든 트릭들도 슬슬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헐리웃 영화가 그만큼 더 언어 리얼리티를 살리는 쪽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서 억지 변명 없이 끼워넣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99/04/2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