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추격전

매우 심각한 독일/체코 영화 [레아]를 보면 우리 관객들만 유달리 웃을만한 장면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요. 헤르베르트가 아내 레아에게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해변으로 갑니다. 그리고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 너무 익숙해진 장면이 펼쳐지죠. 레아는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해변을 달리고 헤르베르트는 그 뒤를 바보같이 천천히 쫓습니다.

우린 이런 트릭에 친숙합니다. 왜일까요? 우린 70년대 한국 영화에서 이런 커플 추격전을 지독하게 많이 보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까르르르르 웃으며 달리고 남자 주인공은 여자 이름을 부르면서 이상할 정도로 천천히 쫓죠. 여자 주인공이 그 소위 간사스런 목소리로 '어머나!'를 외치며 일부러 넘어지면 추격전은 끝납니다.

참 많이 봤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은 70년대 한국 영화들이 아니라 그 당시 영화를 패러디한 수많은 코미디들입니다. 요새 젊은 관객들은 당시 영화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원조가 된 영화는 무엇일까요? [별들의 고향]일까요? 제 기억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 것도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군요. 안인숙의 입술에 덧입혀진 그 간사한 '아저씨이~~~' 운운의 성우 목소리만 기억날 뿐입니다. 정말 그 영화가 최초의 '커플 추격전' 영화인지, 그 영화 말고 다른 커플 추격전 영화들이 있는 것인지도 이제는 확신을 못하겠어요. 그렇다고 그걸 확인하려 [별들의 고향]을 다시 볼 생각도 나지는 않는군요(이 부분은 저보다 기억력이 더 좋은 분들이 체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여간 남은 것은 영화가 아니라 패러디 뿐입니다. 언젠가 이장호 감독이 투덜거린 적 있죠. 자긴 [별들의 고향]이나 [어우동]을 참 진지하고 심각하게 만들었는데, 요새는 그걸 코미디 패러디나 나이트 클럽의 야한 쇼로만 기억한다고요.

[어우동]은 모르겠어요. 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별들의 고향]과 같은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건 참 힘이 듭니다. 경아가 겪는 수많은 고난과 희생과 죽음보다 우리를 더 자극하는 것은 경아의 간사한 웃음소리거든요.

모든 걸 70년대의 연기 스타일과 성우들의 더빙 탓으로 돌리고 싶어요. 사실 커플 추격전도 개념 자체는 그렇게 웃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죠. 진부함이 모두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99/08/0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