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 잡기 쇼

'무드 잡기 쇼'는 제가 아주 싫어하는 클리셰로, 주로 뮤직 비디오나 트렌디 드라마, 그 밖의 소위 '신세대(이 지극히 구세대적인 명칭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들을 겨냥한 문화 상품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상황은 가지가지지만 목적과 생긴 모양은 같습니다. 목적은 의식적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창출해내는 것이고 생긴 모양은 껌종이 디자인처럼 지극히 작위적인 '예쁜 그림'입니다.

대충 이런 것들입니다. 도미노패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애인이 오면 넘어뜨린다든지, 애인 이름이나 구애의 메시지를, 전광판이나 촛불, 그 밖의 다양한 형태로 전달한다든지... 이런 장면이 나오면 당시 유행하는 감상적인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역시 지극하게 진부한 애정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왜 제가 이런 것들을 이렇게 싫어하는 걸까요? 진부하고 상상력 부족한 건 죄가 아닌데.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제 몸에 숨어있는 '로맨티시스트'라는 쬐끄만 괴물입니다. 네, 믿거나 말거나 그런 게 제 뱃속에도 하나 숨어 있답니다. 그런데 이 괴물은 상당히 순수주의자여서 조금이라도 인위적인 것이 들어오면 짜증부터 내기 시작합니다.

전 진짜 로맨티시즘은 전적으로 감정에 의지해야 하고, 솔직해야 하며, 결코 계획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이 '순수한 로맨티시즘'은 지극히 예민한 것이어서 조금이라도 작위적인 것이 뒤섞이면 한심할 정도로 가짜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로맨스가 제대로 살아 남으려면 두 연인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전적으로 생각이 없거나 [밀회]에서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무드 잡기 쇼'는 어디에도 맞지 않습니다. 생각없다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조직적이고, 똑똑하다고 하기엔 자기네의 진부함을 눈치 못채는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리고 이건 어느 쪽에서 보아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가짜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살을 부대끼며 같이 살아온 세대에 대한 본능적인 반발감입니다. 간신히 그 무리에서 빠져 나왔는데 이런 것 때문에 다시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인 것이지만 전적으로 개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전 몇 되지도 않는 문화 상품들에 의해 우리 머리 속에 주입된 작위적인 쇼에 이 나라 국민들이 모두 말려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특히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20살 생일과 같은 생일을 위해 마련된 고정된 행사와 연결된 상업적 행사에는 욕지기가 나요. 그게 상업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조금의 자기 생각도 없이 주입식 명령어에 의해 쓸려다니는 떼거리들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무드 잡기 쇼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겠습니다. 실생활 속에서 그것은 정말 로맨틱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그 진부한 사람들의 진짜 열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I LOVE YOU'를 외치고 있을 야구 전광판들은 모두 로맨틱합니다.

그러나 영화와 같은 문화 상품에서 이런 무드 잡기 쇼가 생각없이 나온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영화란 것은 애당초부터 가짜니까요. '극중인물이 진심이다'라는 설정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그 진실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생각없는 클리셰의 반복으로 장식된 껌광고 같은 이미지로는 어림없습니다.

전 진짜 프로페셔널한 장인들이 만든 보다 진짜같으며 창의적인 상품을 원합니다. 6000원이나 지불했으면 그 정도 쯤은 기대해도 되는 게 아닐까요? (99/10/0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