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보기

'눈빛 연기'의 대척점에는 '먼 산 보기'가 있습니다. 눈빛 연기가 남자 배우들의 전용이라면 먼 산 보기는 여자 배우들이 많이 쓰죠.

연기 방식도 정반대입니다. 눈빛 연기는 또릿또릿한 척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먼 산 보기를 하는 배우들은 일부러 촛점을 흐려 자신을 멍하게 만듭니다.

'눈빛 연기'와 마찬가지로 '먼 산 보기'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몽상이나 회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구체적인 외부 대상에 신경을 덜 쓰게 되니까요.

눈빛 연기와 마찬가지로, 먼 산 보기도 연기의 결과입니다. 아니, 연기의 결과여야 하죠.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먼 산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대로 생각없이 아무 의미없는 구체적인 대상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 산 보기도 곧 눈빛 연기와 같은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 산 보기가 암시하는 꿈, 회상, 환상과 같은 것들은 여성적 미를 강하게 풍겼고, 회상에 잠긴 듯 먼 산 보는 여자들도 꽤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에 연기의 결과여야 마땅할 이 테크닉이 순식간에 기성품화해버린 것이죠.

안이한 연출자의 밑에서 연기하는 안이한 배우들은 이 가짜 테크닉을 거의 모든 장면에 써먹습니다. 특히 캐릭터보다 이미지를 중요시하게 된 요새와서는 정말 끝도 없이 남용되고 있지요. 연속극 시간대에 아무 공중파 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려보세요. 어느 채널에선가 꼭 '이쁜' 주인공이 먼 산을 보고 있습니다. (99/10/2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