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몰아붙이지만...

영화 예술가들만 진부한 문구를 반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평론가나 일반 관객들도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겠어요? 모두 결점투성이 사람들이니까요. 생각하기 귀찮다는 점에서는 그들도 결코 뒤질 수 없죠.

[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몰아붙이지만...]은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의 클리셰입니다. 이 클리셰는 주로 모호한 동성애적 관계를 다룬 영화들, 그러니까 [천상의 피조물]이나 [롱 아일랜드의 사랑과 죽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제복의 처녀], [베니스의 죽음]과 같은 영화들에 대한 자동반응입니다.

조금 길게 늘이면 이렇게 되지요. "그들의 사랑은 순수했지만, 무지한 세계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들의 관계는 동성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걸까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가는 중간 단계 쯤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틴에이저들의 로맨스는 '진짜' 동성애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죠.

물론 이런 구분은 단어를 오용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란 말그대로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여기엔 어떤 다른 의미도 없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같은 성의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동성애입니다. 그 사람의 나이같은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릴리언 패더만 같은 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동성애'에는 육체적 접촉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정말로 '이성애'로 가는 중간 단계여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런 미묘한 구분을 일부러 만들어 적용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건 동성애자를 '일반 세계'에서 격리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입니다. 자, [천상의 피조물]을 보고 있는 스트레이트 관객 한 명을 상상합시다. 이 관객은 줄리엣과 폴린의 격렬한 관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인정하면 동성애 전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지어 그 관계를 멀리서 즐기고 공감한 자신도 그 부류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이럴 수는 없죠. 해결책은? 그걸 '순수한 동성애'가 아닌 어떤 것으로 만들어 몰아붙이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 관객은 양심에 찔리지 않고 [천상의 피조물]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트릭은 종종 새로운 편견을 만들어내거나 옛 편견을 강화시킵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게시판에서 그 예를 본 적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이용자는 "효신과 시은의 관계는 정신적인 것으로, 게이나 레즈처럼 육체적 관계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었지요.

화자가 원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건,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비틀린 삼단 논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 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동성간의 사랑은 플라토닉한 사랑에 한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동성애가 아니다. 동성애자는 정신적인 사랑을 하지 않으니까.

2. 효신과 시은의 사랑은 내 인정을 받았다. (또는 나는 그들을 인정하고 싶다.)

3. 내가 그들을 인정했으므로 (또는 하고 싶으므로) 그들은 동성애자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플라토닉한 관계여야 한다.

결코 좋은 논리는 아니지요. 당연합니다.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제가 인용했을 리가 없죠.

오늘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타인에 대한 편견을 벗자'와 같은 고전적인 것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어를 올바로 쓰자' 또는 '잘 쓰지 않는 낯선 개념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자'인 것 같군요. (00/01/08)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