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할리우드의 뻔한 미국식 영웅주의야

또다른 비평가/관객들의 클리셰입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신나게 보고 나서 사람들은 대충 이런 말들을 하지요. "저런 뻔하디 뻔한 미국식 영웅주의를 봤나. 비현실적이고 어처구니 없어." 관객들이 이것으로 끝낸다면, 비평가들은 조금 더 복잡한 말들을 동원해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주의에 대해 정치적인 비판을 늘어놓지요.

할리우드 영화에 영웅주의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적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어요. 당연히 정치적/문화적 비판도 가능할 겁니다. 저희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인정합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식 영웅주의'라는 말이 지나치게 가볍게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식 영웅주의'에 대해 투덜거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이 '미국식 영웅주의'인지 모릅니다.

대충 예를 들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마게돈]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장엄한 희생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과 싸우는 미국 대통령과 같은 것들을 듭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의 영웅주의가 미국 고유의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영웅주의는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존재해왔으니까요. 최초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길가메슈 서사시]부터가 영웅담 아니었습니까? 영웅들을 모조리 빼버리면 고대 문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물론 외계인과 싸우는 대통령은 우리 눈에 어처구니없이 보입니다만, 그런 예를 다른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린 [다이 하드]의 일당 백 싸움을 보고 웃지만 [삼국지]같은 책에는 그보다 더 허풍스러운 영웅들이 부글거립니다.

왜 우리들의 눈에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주의만 보이는 걸까요? 그건 할리우드가 유달리 영웅주의를 많이 써먹기 때문은 아닙니다. 보다 상식적인 이유 때문이지요.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나라 관객들이 접하는 전통적인 서사 예술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에요. 대부분 사람들이 '미국식 영웅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길가메슈 이후 끊임없이 이어온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전통일 뿐입니다.

'미국식 영웅주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품들을 다 뽑아내고 나면 생각만큼 남는 게 없습니다. 좀 험하게 말한다면 그건 지역적 특성에 불과하니까요. '미국식 우월주의'에 대해서 말하라면... 글쎄요. 실제로 그들은 어느 정도 자격이 있기도 합니다. [아마게돈]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설 나라는 미국일테니까요. 물론 이런 식으로 모든 걸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런 식의 단순한 조건반사적 비판은 진짜 '미국식 영웅주의'를 제대로 비판하는 데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대상에 대한 진지한 이해없는 자동 비판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00/01/10)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