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게이 로맨스

이 분야에 대해서는 [리플리]의 저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저보다 훨씬 상세히 설명해줄 겁니다. 하이스미스는 1952년에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소금의 값 The Price of Salt]이라는 레즈비언 러브 스토리를 쓴 적 있습니다. 83년에, 그녀는 그 소설의 후기에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동성애 소설들은 모두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 보통 그 소설들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들은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자기 손목을 긋거나 근사한 저택의 수영장에서 몸을 던지면서 끝이 났다. 아니면 파트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스트레이트가 되면서 끝나거나."

왜 이렇게 되어야 했을까요? 일종의 사회적 순응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동성애자 캐릭터들이 영화나 소설이 끝날 때까지 멀쩡하게 살아남는다면 그 작품은 부도덕하고 위험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을테니까요. 하지만 비극적인 결말로 끌어간다면 사람들은 그걸 동성애에 대한 경고 쯤으로 여기고 작품을 받아들일 겁니다. 물론 스트레이트 작가의 손에 들어가면 그건 진짜 경고였어요. [셀룰로이드 클로짓] 후반부에 나오는 그 끔찍한 장면들을 기억하세요? 다양한 동성애자 캐릭터들이 비참한 종말을 맞는 장면만 편집해서 내보냈었지요.

동성애자 관객과 독자들이 그토록 해피 엔딩을 열망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해피 엔딩은 헐리웃의 뻔한 해피 엔딩과는 달리,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설 [소금의 값]도 그런 혁명적 작품이었어요. 그 소설에서 주인공 테레즈와 캐롤은 끝에서 맺어집니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52년엔 충격적인 결말이었어요.

그러나 정상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동성애 영화나 소설들이 양산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습니다. 소설은 조금 빨랐지만, 영화는 대충 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던 것 같아요. 90년대에 들어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게이 로맨틱 코미디는 아주 흔한 장르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샌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이제는 비극적으로 끝나는 게이 로맨스도 슬슬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증오스러운 클리셰에서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변할 때가 된 것이죠. 하긴 비극적인 로맨스도 있어야 재미있지 않겠어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원래 나온 영화나 책도 별로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당연히 동성애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몇 년 전에 두 편의 레즈비언 소재 단막극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적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정말로 그 옛날의 구식 '비극적 게이 로맨스' 클리셰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용감하게 게이 소재를 다룬 건 칭찬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소식이 너무 늦었던 것이죠. (00/02/2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