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게이 판타지

'이성 게이 판타지'가 무엇인지 바이트를 낭비해가며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간단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성의 동성애에 대해 더 관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냥 관대한 정도가 아니죠.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동성애는 이성애적인 판타지의 일부입니다. 남성 관객들을 의식한 많은 포르노 물은 덤으로 레즈비언 판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 동성애 물의 팬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여성들이지요.

왜냐라고 물으신다면, 뭐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성의 동성애는 관음증적인 요소를 더 강화시키고 순수하게 합니다. 이성애를 몰래 훔쳐보는 사람들 중 몇몇은 화면에 등장하는 동성에 질투심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죠. 이성의 동성애는 그런 요소를 싹 지워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성 동성애 판타지는 동성애 소재 문화 상품의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실 동성애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이런 이성 동성애 물이지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나 [엠마누엘] 시리즈 같은 것들을 보세요.

이런 작품들을 꼭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변형된 이성애라고 해서 이런 종류의 작품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뱀파이어 연대기]는 여성팬들 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 동성애자 팬들도 사로잡고 있습니다. 셰리단 레파누의 [카밀라] 역시 수많은 여성 동성애자 팬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영화를 따진다면 [인디안 서머]나 [쇼우 미 러브]와 같은 작품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모두 좋은 동성애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이성이 쓴 동성애 작품이라고 꼭 변형된 이성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예로 들죠. [열차의 이방인], [1월의 두 얼굴], [재능있는 리플리]와 같은 작품들은 모두 두 남성들의 강한 동성애적 감정에 바탕을 둔 서스펜스 소설들입니다. 그러나 하이스미스는 양성애자였으니, 이걸 꼭 이성애적 판타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반대로 하이스미스의 동성애적 취향이 살짝 성전환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하는 게 더 그럴싸하지 않겠어요? 이성애보다는 이성의 동성애에 대해 더 능숙하게 쓰는 동성애자 작가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은 쉽지 않죠. 카슨 맥컬러즈의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에 나오는 싱어와 안토나폴로스의 동성애적 관계는 과연 이성애적 판타지일까요, 아니면 동성애적 취향이 성전환한 것일까요?

너무 복잡해지니까 여기서 줄이기로 합시다. 모든 이성 게이 판타지가 이처럼 복잡하고 정교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성애적 요소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영화나 책을 망쳐놓는 거죠. 한마디로 이성의 게이 판타지를 다루는 사람들은 소재를 착취하는 경향이 많아요.

데이빗 해밀턴의 영화 [빌리티스]가 대표적인 예일 거예요. 해밀턴은 레즈비언 묘사로 어떻게든 화면을 이쁘게 꾸미고 자기 자신을 흥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정작 두 캐릭터의 감정이나 애정과 같은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긴 잊지 않았어도 그걸 다룰 생각은 하지도 않았겠지요.

이런 건 일종의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 게이 판타지가 동성애 문화 상품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건 그 나라의 동성애 문화가 발전 초기 단계에 있다는 증거가 될 겁니다. 시작도 못했다면 그런 작품들은 나오지도 못할 거고, 보편화되었다면 동성애자들이 직접 만든 상품들이 주류를 차지할테니까요. (00/02/2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