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선물

우리의 주인공이 악당의 총탄에 정통으로 가슴을 맞고 쓰러집니다. 하지만 "죽었구나!"라고 관객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은 수퍼맨처럼 다시 일어나는군요.

비결이 뭘까요? 방탄 조끼라도 입었던 걸까요? 그건 아니랍니다. 억세게 운이 좋았던 거죠. 총을 맞은 가슴 주머니 안에 뭔가 넣어두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어쩌다보니 방탄막 역할을 했던 거죠.

단순한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을 '그냥 우연이다'라고 처리하는 경우는 없어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은밀한 초자연현상이 개입되어 있답니다.

주인공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트릭이 아니냐고요? 그렇긴 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우선 방탄막이 된 물건이 그냥 물건인 적은 없거든요. 십중팔구 무척 소중한 물건입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애인한테서 선물로 받은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성경과 같은 종교적 상징물이며, 그것도 아니라면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주인공을 이끌었던 상징적인 물건일 수도 있죠.

이런 물건들이 몸을 바쳐 구했으니 관객이나 주인공이 여기에 우연의 일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는 정말로 의미가 있습니다. [슬리피 할로우]를 보세요. 크레인은 카트리나가 선물로 준 책 때문에 목숨을 구합니다. 카트리나가 결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바로 직후 말이에요. 이런 경우 카트리나의 책은 선언이 됩니다. 크레인은 단순히 주인공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어요. 카트리나와 맺어지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었지요. '영원한 사랑'과 '진정한 반쪽' 같은 로맨틱하고 뻔한 말들이 머리 속에서 와르르 쏟아지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트릭은 오래 전에 낡았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방탄 선물에 대해서는 꽤 관대한 듯 싶습니다. 이미 그 트릭이 낡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노골적인 트릭이 제공하는 로맨티시즘과 운명론까지 버리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00/05/3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