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어딜가도 에펠탑은 보인다

'여기는 파리!'라는 정보를 영화 속에서 가장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걸 겁니다. 아코디언이 프랑스 풍의 감상적인 멜로디를 배경음악으로 연주하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면 에펠탑이 보이는 거죠.

그래서 파리를 무대로 한 영화의 절반 이상은 에펠탑 주변에서 찍은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정말로 공을 들여 그런 걸 하지도 않죠. 창 밖에 에펠탑의 확대 사진을 걸어두었을 뿐이니까요.

진부하고 뻔하고 괴상하다고 놀려대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파리를 상징하는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개선문 역시 에펠탑만큼이나 중요한 파리의 상징물이죠.

하지만 개선문은 에펠탑만큼 높지 않습니다. 그걸 찍으려면 정말로 개선문 근처에 가야 하죠. 배우들까지 보낼 필요는 없지만 배경 프로젝트를 찍기 위해 촬영 기사라도 보내야 합니다.

에펠탑은 그럴 필요가 없죠. 그냥 높은 탑이니까요. 어디서 보여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전 이 글에 '파리 어딜가도 에펠탑은 보인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 이 흉물스러운 탑은 정말 꽤 멀리서도 보일 겁니다. 런던의 빅 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마찬가지의 지물 활용법의 희생자가 되죠.

하지만 아무리 편해도 한두번이죠. 자꾸 보면 질립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활용법의 진부함을 탈피할 수 있을까요?

히치콕은 이런 지형을 적극적으로 플롯에 도입하는 장기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주무대인 [해외특파원]에서는 풍차가 납치범들의 아지트로 사용되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클라이맥스를 러쉬모어 산이 장식하는 것 따위 말이에요. 이들은 모두 훌륭한 장면들이긴 합니다만 계속 쓰기는 좀 그렇습니다. 여전히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거든요.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 [지하철의 소녀]에서 루이 말은 에펠탑을 흉물스러운 철괴물처럼 묘사하는데, 그건 지금까지 나온 어떤 에펠탑 영화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도 귀찮다면? 뭐, 그럼 그냥 자막이나 대사로 여기가 파리(또는 런던이거나 뉴욕)라고 알리면 되겠죠. 꼭 신경써야 할 일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너무 꾸미면 억지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00/06/2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