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회 결석

일 때문에 아주 바쁜 엄마나 아빠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분명 공들여 발레나 연극, 미식 축구, 야구와 같은 것을 연습하는 딸이나 아들이 있겠죠? 하지만 자기 아이가 중대 발표나 시합을 하는 날마다 우리의 주인공인 엄마나 아빠는 참석하지 못합니다. 일이 너무 바빠서거나 자꾸 깜빡해서지요. 우리의 주인공은 장황한 변명이나 거짓말로 무마하려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간신히 잡아놓은 다음 발표회나 시합도 또 까먹고 말고요. 덕택에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에 대한 믿음을 점점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기서 뭔가 일어납니다. 초현실적인 일일 수도 있고, 아이에게 뭔가 끔찍한 사고가 생겼을 수도 있고, 주인공이 갑자기 개심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결론은 대부분 비슷비슷합니다. 주인공은 이번에는 절대로 발표회나 시합에 가겠다고 약속하지만, 하필 그 날은 사업상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날입니다. 게다가 만나야 할 사람은 그 날 따라 늦죠. 한참 망설이던 주인공은 결국 결심합니다. "맞아, 중요한 것은 내 딸(아들)의 발표회(시합)야. 내가 지금 가지 못하면 난 엄마(아빠)로서의 자격이 없어." 주인공은 사업상의 약속을 깨고 아이가 있는 학교로 달려갑니다. 물론 늦게 나타난 사업상 파트너가 주인공의 가족적인 면에 감명을 받아서 사업상의 일도 잘 풀리겠지요?

[후크], [어느 멋진 날], [라이프-사이즈]... 바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나오는 미국 영화들은 툭하면 '발표회 결석' 클리셰를 써먹고 있습니다. 뒷부분의 결말까지 나오지 않을지는 몰라도 발표회를 잊고 죄의식에 빠지는 미국 학부모의 이야기는 정말로 흔하지요.

50년대 미국 남성들에겐 아마 로빈 윌리엄즈의 캐릭터가 [후크]에서 느꼈을 죄의식은 낯선 것이었을 겁니다. 이 클리셰는 최근 미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남녀 모두에게 가족의 중요성이 비슷한 비중으로 다가가고, 가족이라는 대상이 새로운 의미를 얻어가는 현대 미국을 사는 부모들은 모두 아이들의 발표회를 빼먹는 데에 조금씩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우리 관객들에겐 아주 신기해보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과외 활동은 그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으며 의미도 미약합니다. 학교는 그냥 공부 공장이죠. 둘째로 우리 부모들은 그런 데 빠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겠죠. 애들이 시합에 나간다고 감히 일자리를 뜨다니요. 사치스럽기는! 우린 여전히 슬픈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00/10/24)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