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한 연인들

'환생한 연인들'은 로맨틱한 판타지를 추구하는 영화들이 가장 생각없이 써먹는 공식 중 하나입니다. 아마 가장 위험한 공식 중 하나일 거예요. 징그러울 정도로 진부한데도 관객들이나 작가들이나 그 진부함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니 말입니다.

환생 이야기의 핵심은 죽음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과거에 맺어지지 못한 두 연인들이 현대에 다시 태어나 과거의 연을 잇는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식이죠 ([몽중인], [환생]...) 물론 여기엔 약간의 변형이 있습니다. 종종 남자나 여자가 죽는 대신 초자연적인 형태로 살아남았다가 현대에 다시 나타나 환생한 여자나 남자를 찾기도 합니다([진용], [은행나무 침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종종 이들의 적수나 연적 역시 같은 식으로 살아남았다가 둘을 괴롭히기도 하죠 ([은행나무 침대.) 환생 시기가 짧아서 이전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과 새로 환생한 사람이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지 점프를 하다], [환생]...) 꼭 환생을 다루지 않고 분위기만 잡아도 됩니다. 해머 버전 [미이라]에서 고고학자의 아내가 정말로 환생한 공주라는 증거는 없죠.

이들은 어떻게 만날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둘은 환생해도 늘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나거든요. 하지만 종종 이를 뒤집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환생]이나 [번지점프를 하다]가 대표적이죠. 그러나 이런 영화들도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다'라는 개념을 관객들이 인정했기 때문에 효과적이었던 것이랍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유행일까요? 우선 사람들이 환생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환생 아이디어를 거부했던 문화권에서도 환생은 이미 보편화된 아이디어죠.

그리고 개념만 따진다면 로맨스 영화의 기둥으로 이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죽음을 초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우린 로맨스 영화가 다루는 사랑이 우리의 삶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인 것이 되길 바랍니다. 환생한 뒤에도 그런 감정이 이어진다니 어찌 황홀하지 않겠습니까?

로맨스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과거 지향적이라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우린 보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웠으며 극적이었던 과거에 대해 로맨틱한 향수를 품고 있습니다. 환생 이야기를 끌어들인다면 이런 로맨틱한 과거와 친숙한 현대를 연결시켜 그럴싸한 대리 충족을 줄 수 있습니다. 그냥 과거의 사람은 과거의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과거에 공주였던 사람이 현대에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몰입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쓴 훌륭한 영화들은 많습니다. [환생]처럼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도 있고, 보리스 칼로프의 [미이라]처럼 훌륭한 공포 영화도 있죠. 하지만 이 영화들이 '훌륭한' 것은 단순히 이런 공식을 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상을 했기 때문이죠.

환생 이야기는 믿을 수 없고 허풍스럽고 조잡한 이야기로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환생을 믿는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가 공상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사실적인 이야기와 판타지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한데, 이걸 해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극단적인 사랑의 완성을 추구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한마디로 죽자고 사랑만 추구하다보니 감정의 입체성이 떨어집니다. 툭하면 괜한 비장감만 날리는 문화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면 더 끔찍해질 가능성이 높죠.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감정은 없어지고 그 빈 자리를 배우들의 똥폼이 채우는 거죠.

해결책은? 일단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전생 이야기를 끌고 온다면 일단 무시하고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그럴싸한 영화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죽자고 매달린다면 환생 말고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봐야겠죠. 아마 그 각본의 질을 결정하는 건 그 다른 이야기일테니 말입니다. (01/02/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