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럴 줄 알았어!

'저럴 줄 알았어!'는 주로 시상식이나 영화제 마지막날 튀어나오는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클리셰입니다. 영화에 웬만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이 클리셰에 말려들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래요.

자, 시상식이 끝났습니다. 어떤 상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예측했던 사람에게 돌아갔고 어떤 상은 비교적 또는 아주 뜻밖의 인물에게 돌아갔지요. 하지만 아무리 뜻밖인 수상이어도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저럴 줄 알았어. 저건 처음부터 너무 자명한 것이었다고. 왜냐하면 주절주절..." 네, 이런 경험은 분명 저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저 자신 역시 바로 몇 초 전에 똑같은 소릴 늘어놨는 걸요. 이 글을 쓴 뒤에도 그런 버릇이 멎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이번 아카데미 최고 이변은 마샤 게이 하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 수상에 설명을 붙이는 게 어려울까요? 천만에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케이트 허드슨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유력했었다고? 하지만 넌 둘이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걸 잊고 있어. 분명히 둘은 서로의 표를 갉아먹을 거야. 주디 덴치? 이미 몇 년 전에 조연상을 한 번 받았잖아. 과연 [초콜렛] 같은 영화로 또 상을 줄까? 줄리 월터즈? 좋은 배우지만 아카데미는 외국인들에게 박해. 자, 이제 마샤 게이 하든을 보라구. 아카데미상이 좋아하는 극적인 캐릭터에, 주연이라고 해도 될만큼 비중도 크잖아. 게이 하든이 상을 타는 건 당연했어." 그러나 이렇게 주절거리는 사람이 과연 게이 하든이 아카데미 상을 탈 걸 사전에 예측하기는 했을까요? 어림 반푼어치 없죠. 전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도 이 정도 설명은 모두 다 달아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이건 정말 쉬운 일입니다. :-)

뻔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연해'를 늘어놓습니다. 여러분은 다음 호 영화 잡지에서도 수많은 '역시 그랬어'식의 문장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왜냐고요? 첫째로 이렇게 떠들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위상을 잔뜩 높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건 단순히 잘난 척을 위한 놀이가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려는 지적 시도지요. 단지 이런 작업은 자연과학적 대상과는 달리 검증이 쉽지 않아서 의미있는 분석이 되기는 힘들지만 말입니다. 하긴 대부분 인문학적 연구 대상들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도 자체는 어느 정도 필수적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고 싶어하니까요. 그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약간 잘난 척을 한다고 해서 해될 건 없습니다. 단지 이런 허풍에 진짜로 속아 넘어갈 필요는 없다는 거죠.

중요한 교훈이 따라오니 암기하시길. 설명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까 예로 든 게이 하든도 마찬가지죠. 전 주디 덴치가 수상했다고 치고 같은 수준의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디 덴치가 정말로 수상한 것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게이 하든이 상을 탔다고 해서 위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설명이 사실이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작년에 나온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처럼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한, 이 모든 것들은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01/03/27)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