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데이트

몰래 연애하는 커플들 이야기는 영화보다는 연속극이나 시트콤에 더 자주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워낙 사례가 많기 때문에 고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프렌즈]에 나오는 모니카와 챈들러를 보세요. [순풍 산부인과]에 나오는 혜교와 창훈은 어떨까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나오는 민정과 재황, 윤영과 오중은요? (네,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지금 들통났지만요.)

왜 이 친구들은 연애하는 걸 그렇게 감추는 걸까요? 혜교와 창훈은 나이차라도 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들 공개하고 다녀도 아무 문제 없는 사람들이에요. 물론 친구 동생과 연애하는 것이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고, 그밖의 하찮은 이유도 있겠지만, 결코 대단한 이유들은 아닙니다. 선남선녀가 연애 좀 하겠다는 데 주변에서 말릴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자기들의 관계를 숨깁니다. 그래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거든요. 몰래 데이트는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연애하는 상대방을 싫어하는 척 할 수도 있고, 중간에 눈치 없는 제3자가 끼어들어 어설픈 삼각관계를 만들 수도 있으며, 몰래하는 데이트이기 때문에 온갖 서스펜스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소재가 궁하기 마련인 시트콤의 경우, 참 고마운 공식이지요.

그러나 그러다보니 설정에 억지가 많아지고 설득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점점 연인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들도 사라지고 있고요. 예전이라면 인종이나 계급, 부모들의 싸움이 대단한 문제겠지만, 요새는 그렇지도 않잖아요? 너무 잦아지다보니 마구 데자뷔 현상이 일어나는 단점도 있고요. 윤영과 오중의 몰래 데이트가 그처럼 빨리 끝났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사실 자주 쓰면 쓰는 사람도 지겹거든요. 단물을 빼낼 구석도 많지 않았을 겁니다.

이 고마운 트릭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진부함을 극복할 만한 새로운 장벽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만만한 방법일 겁니다. 흠... 어떤 게 좋을까요? 쉽게 떠오르지 않는군요. 하긴 그렇게 즉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처럼 자주 반복되지도 않았겠지요. (01/05/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