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 죽었대!

글 쓰는 데 필요해서 미국사 관련 자료들을 뒤적거리는 중입니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드네요. 도대체 존 F. 케네디라는 남자가 뭐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난리를 치는 거야? 암만 봐도 케네디는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게 없습니다. 내정 면에선 의회랑 툭탁거리며 다툰 것 이외에는 기록할 만한 게 없고 칭찬받는 외교에서 남긴 업적도 미심쩍네요. 특히 쿠바 미사일 사태 같은 건, 정치적 의도는 잊는다고 해도, 결코 그 사람 팬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그럴싸한 업적이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케네디가 남긴 건 뭔가요? 올리버 스톤의 [닉슨]을 보면 해답 비슷한 대사가 나옵니다. 닉슨이 이러잖아요. "사람들은 자네를 통해 그들이 되고 싶은 걸 보고, 나를 통해서는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네." 다시 말해 케네디는 진짜 정치가로서보다는 이미지와 상징으로 더 중요한 인물인 듯 합니다. 한 일은 별로 없지만 연설문들은 아름다웠고, 이미지 메이킹은 전설적이었으며, 옆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우아한 퍼스트 레이디가 서 있었지요.

그러고보면 케네디의 죽음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그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게 이해가 가요. 케네디는 사람이 아니라 상징이었으니까요. 미국인들이 보았던 건 경험 부족으로 쩔쩔매는 바람둥이 정치가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었던 보다 거대한 것들을 이 남자에게 투영했던 거죠. 암살은 그들에게 그런 허상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랬으니 케네디보다 훨씬 능력있는 정치가 수백명의 죽음보다 더 인상적이었을 수밖에.

그 결과는? 수십 년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애도되다보니, 그의 죽음은 문학적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특히 60년대를 무대로한 소설이나 영화들은 당연하다는 듯 케네디의 죽음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상실의 시대 Lost and Delirious]의 원작인 수잔 스완의 [바스의 아낙네들]을 읽었는데, 그 책도 마찬가지더군요. 주인공 마우스는 케네디의 열렬한 팬이고 끝도 없이 백악관에 팬레터를 보냅니다. 그러다 중반부를 좀 넘어가면 달라스의 참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거죠. 그 순간 마우스의 세계는 반쯤 무너져 버립니다.

케네디의 죽음은 엉뚱한 핑계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귀여운 바람둥이]를 보세요. 케네디의 죽음으로 충격받고 방황하던 주인공 샬롯은 종탑에서 그동안 눈독 들이고 있던 수녀원 관리인과 찐한 키스를 하죠.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그 성격에 그처럼 진도가 빨랐을 리가 있나요.

그냥 괜히 끼어드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성장 영화 중 하나인 디안느 퀴리의 [박하 레모네이드]에서도 케네디의 죽음이 등장해요. 자매 중 한 명이 갑자기 뛰어들며 외치죠. "케네디가 죽었대!"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이 프랑스 틴에이저 소녀들의 성장에 어떤 대단한 역할을 했을까요? 아뇨, 제 기억엔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그냥 그 해가 63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죠. (01/07/1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