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가들

여러분도 학교에서 '명언'같은 걸 누런 색도화지에 써서 복도나 교실 뒷벽에 붙이는 일을 하신 적 있나요? 참, 쓸데 없는 일입니다. 학교 사람들이야 교실에 에머슨이나 간디의 명언을 적어놓으면 그걸 읽은 학생들이 교화될 거라고 믿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왜 쓸데 없는 지 말씀드리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도 전체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문장 한마디는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의견이 일치한 건 아니라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애국심에 대해 위인 1번의 의견을 무기로 사용한다면 상대방은 잽싸게 위인 2번의 의견을 방패로 그걸 받아칠 수 있습니다. 아니, 두 사람도 필요 없습니다. 텍스트 양만 많으면 한 사람으로도 충분해요.

이런 인용구 던지기는 무의미하고 지극히 비교육적이기도 합니다. 우선 철저하게 권위주의에 의존하고 있고, 남이 한 말만 집어던지다 보면 정작 대상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교육 환경에서 자라서 그랬는지, 우리나라 대중 문화에는 유달리 인용구 던지기가 많습니다. 단지 이 경우는 학생들을 교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럴싸한 말로 자기를 꾸미려는 것이기 때문에 꼭 위인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동네에 떠도는 헛소문이어도 상관 없어요. 요새 나오는 광고들을 한 번 보세요. "사랑은 반지래... 뭐뭐하면 뭐뭐하거든..." "친구들에겐 향기가 없대... 뭐뭐하면 뭐뭐하거든..."

지겨워요. 습관적 인용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멋있지도 않고요. 인용은 그렇게 자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뭐뭐래'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힘이 떨어지고 말거든요. 서툴러도 자기가 직접 말을 하는 것과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주워들은 말을 아는 척하며 주워섬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진실성이 높아 보이겠어요?

이런 싸구려 인용 습관은 종종 나 좀 보소 상징주의와 결합되어 더욱 저속해집니다. 싸구려 상징주의는 대부분 게으른 인용을 뿌리로 두고 있거든요. (01/08/0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