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E.T.]의 유명한 장면을 생각해보세요. E.T.가 죽자 불쌍한 엘리엇은 E.T.의 시체 앞에 홀로 앉아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다 엘리엇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르자 갑자기 E.T.가 다시 살아나네요!

[E.T.]에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수많은 영화들이나 소설들이 이런 식의 결말로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있지요. 결말을 노출하게 되므로 직접 예를 들기는 어렵지만 말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이 갑자기 살아나는 이런 트릭이 이렇게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부활'이라는 것이 서구 관객들에게 주는 효과 때문이겠지요. [E.T.]가 신약 성서의 현대적 변형이라는, 이제는 보편화된 해석을 고려해보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요. [E.T.]처럼 노골적인 변형이 아니라고 해도 '부활'이라는 엄숙한 과정은 결말을 훨씬 거창하게 만듭니다.

두 개의 극단적인 감정이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극적인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슬픔 뒤에 오는 기쁨은 훨씬 강한 법이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비극적 결말의 장점과 해피 엔딩의 장점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지요. 주인공의 가짜 죽음을 이용해 비극적 결말에 사용되는 온갖 감정 폭발을 다 써먹으면서도 관객들을 더 동원할 수 있고 극장 나와서 기분도 좋아질 해피 엔딩을 버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편리하죠? 네, 참 편합니다. 문제는 너무 편해서 상당히 작위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한참 주인공의 죽음에 눈물을 쏟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살아나면 배반당했다는 느낌을 받는 관객들도 생길 거고요. 자주 쓰이는 공식이지만 아주 잘 쓰려면 꽤 머리를 써야 합니다. (01/08/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