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셔츠의 죽음

'빨간 셔츠의 죽음'은 '할리우드 살생부'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조금 독특하기 때문에 따로 다루어도 될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이 소재를 따로 다루는 건 순전히 할리우드 살생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걸 빼먹었기 때문이지만 말입니다.

'빨간 셔츠의 죽음'은 [스타 트렉] 우주에 속해 있습니다. 자, 머나먼 우주로 탐사를 떠난 엔터프라이즈호가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도중 이상한 행성에서 정체불명의 괴신호를 받습니다. 당연히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려가 봐야겠지요? 곧 탐사대가 결성됩니다. 커크 선장, 미스터 스포크, 맥코이, 그리고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빨강 셔츠를 입은 승무원이 하나나 둘.

이 빨간 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왜 등장하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엔터프라이즈호가 돌아다니는 우주는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곳마다 사상자가 한 둘 쯤 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고정 캐릭터인 커크 선장이나 미스터 스포크를 죽일 수는 없겠지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작가들은 빨강 셔츠를 입은 일반 승무원을 만들어 동원하게 됩니다.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순전히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빨간 셔츠들은 영화 버전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다행히도 영화 버전 [스타 트렉 1]의 빨간 셔츠들은 텔레비전 시리즈보다 운이 좋았죠. 일리아 중위나 윌러드 데커는 실질적인 주인공이었으니까요. 그 못생긴 빨간 셔츠도 입을 필요 없었고요.

[넥스트 제너레이션], [딥 스페이스 나인], [보이저]로 이어지면서 빨간 셔츠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세월이 지나자 점점 사상자들이 줄어 갔고 사상자들을 다루는 방식도 세련되어 진 것이지요. 요새 나오는 [스타 트렉] 시리즈에서 노골적인 죽음의 빨간 셔츠를 입은 승무원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많은 [스타 트렉] 팬들은 '빨간 셔츠'나 '빨간 셔츠를 입은 사람'과 같은 표현을 '운수 없는 놈'쯤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01/10/1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