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반전으로 사람을 놀래키는 수법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아직도 그럴싸한 반전을 무기로 내세운 수많은 영화들이 있죠.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와 같은 작은 영화들을 흥행 히트작으로 만든 것도 그들이 홍보용으로 내세운 뜻밖의 결말입니다.

위에 예를 든 영화들의 결말이 정말 그렇게 뜻밖인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두 영화 모두 선례가 있지요. [유주얼 서스펙트]만 해도 추리 소설 장르에서는 아주 유명한 선례가 있습니다(무슨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아시겠지요?) [식스 센스] 결말이야 유령 이야기의 단골이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속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결말과 복선을 스토리에 잘 비벼넣으면 이미 사용된 반전도 새로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 관객들은 기억력이 그렇게까지 좋지 못해요. 잊어버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터트리면 대충 속죠.

문제는 사람들이 반전을 지나치게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식스 센스]를 본 사람들은 정작 결말에 신경을 쓰느라, 영화 본래의 스토리와 주제를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했습니다. [디 아더스]도 비슷한 경우일 겁니다. 반전을 눈치챘다고 으스대느라, 정작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신경쓰지 않았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몇 번 한 이야기 같은데,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반전은 꼭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반전을 예측한다고 해도 반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음악 끝의 코다와 같은 것입니다. 반전은 '사람들을 얼마나 놀라게 하느냐'로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조상 얼마나 자기 기능을 하느냐'가 진짜 평가 기준이죠.

실제로 많은 반전들이, 사람들이 이런 반전들에 익숙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쓰여집니다. [와일드 씽]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반전은 사람들을 놀래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규칙적으로 그런 식의 반전이 나올 거라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런 식의 규칙적인 반전이 만들어내는 야비한 블랙 코미디 스토리의 구조에 있었지요. 그런데도 게으른 평자들은 이 영화가 끝도 없이 사람들을 놀래키려고만 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끝에 반전이 나온다고 해서 그게 영화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술수에 속지 마세요. 괜찮은 영화들은 깜짝쇼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깜짝쇼만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 수 없어요. (01/12/2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