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조직의 디자이너

[가제트] 시리즈의 악당 클로 박사는 매드 일당이라는 비밀 조직의 우두머리입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는 이 악당들을 구별하기는 쉽습니다. 모두 매드 일당의 표식을 달고 있고 종종 유니폼까지 입고 있거든요. 이들이 누군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변장한 자기 집 개 브레인을 쫓느라 정신없는 주인공 가제트뿐입니다.

[가제트]는 좀 노골적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매드 일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속의 비밀 조직들은 비밀보다는 디자인에 은근히 더 신경을 쓰는 듯 합니다. [다크 앤젤]의 맨티코어를 보세요. 엄연한 비밀 단체지만 단체의 목표를 상징하는 표식과 로고, 레터링까지 따로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왜 그런 로고를 디자인한 걸까요? 홍보가 전혀 필요 없는 단체인데?

디자인은 다른 데도 필요합니다. 악당들이 세상을 멸망시킬 로봇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엔지니어들만 가지고는 로봇을 만들 수 없어요. 디자이너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의 악당들이 상당히 비싼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건 악당들의 로봇과 우주선의 모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예는 그런 비밀 조직의 컴퓨터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해커가 조직의 컴퓨터에 잠입했습니다. 슬쩍 들여다봐도 인터페이스가 사용자 위주로 굉장히 편리하게 잘 짜여져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디자인도 엄청 잘 되어 있고요. 이게 비밀 조직의 컴퓨터라는 걸 알려주는 건 자상하게 화면 위에 깜빡이는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라는 명령어뿐입니다. 도대체 비밀 수호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하긴 아무리 비밀스러운 일에 신경을 쓰는 악당들이라고 해서 자기 나름대로 멋을 내지 말라는 법도 없고, 불편하게 구성된 인터페이스로 시간 낭비해야 한다는 법도 없죠. 그러나 그 악당들은 도대체 그런 디자이너들을 어디서 데려오는 것일까요? 그 세계에는 비밀 조직만 전담하는 디자이너들이 따로 있는 걸까요? (02/01/1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