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강의

[똑바로 살아라]의 정명이에겐 천체 관측의 취미가 있습니다. 괜찮은 천체망원경을 하나 가지고 있고 틈만 나면 별을 보러 나가지요. 좋은 취미입니다.

문제는 그 친구가 그 취미를 연애 생활까지 연장할 때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는 괜찮은 취미를 가진 젊은 남자에서 느끼한 스테레오타입이 됩니다. 꼬시고 싶은 여자를 끌고가서 이런 대사를 늘어놓는 거죠. "저 별자리가 무엇인지 아세요?..."

젠장.

우린 이런 장면들을 정말 끝도 없이 봤습니다. 대부분 별자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는 남자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자에게 자신의 그 얄팍한 지식을 뽐내는 것이죠. 여자가 남자한테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꼭 남자들이에요. 그것도 꼭 별자리고요.

아마 이건 우리나라에 특별히 인기가 더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이 그 원조가 아닐까요? 물에 젖고 지친 지주의 딸을 옆에 앉혀놓고 별자리와 별에 대해 강의하던 그 양치기를 기억하세요? 어느 순간부터 그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별]은 좋은 단편입니다. 하지만 이걸 흉내내는 건 따분합니다. 우선 "저 별자리가 무엇인지 아세요?"라고 말하는 남자들 중 도데의 양치기처럼 환상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그리스 신화에서 빌려온 뻔한 스토리만 반복하고 있지요.

그리고 도대체 왜 다들 별자리 이야기만 하는 겁니까? 그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별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더 늘어났고요. 하늘엔 별자리보다 더 흥미진진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들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저기 직사각형의 끝을 이루는 백조자리의 별이 보이세요? 저 별은 백조자리 61번 성인데, 사실 5.3등성과 5.9등성으로 이루어진 이중성으로 두 별이 약 7세기를 주기로 느린 회전운동을 하고 있지요." 과학 지식이 너무 건조하다면 약간의 역사는 어때요? "백조자리 61번은 연주시차를 이용해 지구와의 거리를 측정한 최초의 별입니다. 독일의 천문학자 F.W. 베셀이 1838년에 처음으로... 참, 그 이전에 연주시차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데, 연주시차란 지구의 공전을..." 이게 맘에 안든다면 약간의 문학지식을 가미하는 건 어떨까요? "할 클레멘트는 이 연성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천체에 영감을 얻어 그의 걸작 [중력의 임무]의 메스클린 행성을..."

이런 이야기가 지겨워요? 연애하러 온 것이지 학교 수업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세상이 다 아는 별자리 이야기에 뒤늦게 감탄하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뭡니까? 도대체 그 동안 천문학 책이라도 한 권 읽지 뭐했어요? 그러니까 재미도 없는 남자의 고루한 말장난에 홀랑 넘어가 나머지 러닝 타임 동안 신세를 망치는 거란 말입니다. 지식은 무기이고 그건 연애 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03/12/04)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