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텔레비전은 평등한 매체입니다. 물론 이 평등에도 등급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천만원짜리 벽걸이 텔레비전을 포함한 홈시어터로 공중파, 케이블, 위성, DVD를 섭렵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먹만한 아날로그 텔레비전으로 공중파 방송이나 간신히 볼테니까요. 그러나 그런 차이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텔레비전은 여전히 다른 매체에 비해 평등합니다. 수천만원짜리 텔레비전으로 보는 [왕꽃선녀님]이 주먹만한 아날로그 텔레비전으로 보는 [왕꽃선녀님]보다 특별히 더 감명깊지는 않지요. 다 고장난 아날로그 텔레비전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삶에 필요한 기초적인 정보를 얻는 데엔 별 무리가 없고 동네 아줌마들과 전날 방영된 연속극에 대해 수다 떠는 데에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천만원짜리 텔레비전과 다 고장난 구식 텔레비전 사이에는 엄청난 때깔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친척 매체인 영화 속에서 더욱 분명해지지요. 텔레비전이 삶의 구질구질함을 표현하는 가장 훌륭한 매체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 번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카메라로 찍어 보세요. 좋은 그림을 얻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영화에 나오는 텔레비전은 껌뻑껌뻑거리는 흐릿한 그림만 간신히 보여줍니다. 그 기계를 통해 나오는 정보가 무엇이건 그건 영화 속에서 굉장히 조악하고 졸렬해 보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 자체 역시 영화에서는 굉장히 매력없어 보입니다. 영화는 동적인 장르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길 바라죠.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정적이고 수동적이며 맥이 빠져 있습니다. 주인공으로서는 자동탈락인 셈이죠. 그들은 그냥 흐릿한 그림이 껌뻑이는 걸 바라보는 바보들인 겁니다.

시간대도 중요합니다. 저녁에 온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장면은 따뜻하고 기분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후 시간대면 어떨까요? 우리의 주인공이 자잘한 일상의 소음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동안 오후 시간대의 하찮은 프로그램을 보는 광경을 생각해보세요. 환경도 엉망, 기계를 통해 나오는 그림도 엉망, 바깥의 소음 때문에 들리는 소리도 엉망인데, 심지어 그걸 보는 사람은 나가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능력도 없는 모양입니다!

자, 이제 왜 오후 시간대에 껌뻑이며 돌아가는 텔레비전이 삶의 조악함과 정신적/경제적 빈곤을 표현하는 단골 도구가 되었는지 명백해졌습니다. 물론 이건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서 더 잘 쓰이는 도구이지만요. 아직 우리나라 오후 시간대의 공중파 방송은 미국에 비해 덜 저열하고 더 따분하거든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사용방식이 특별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05/03/0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