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느와르 독백

'필름 느와르 독백'은 필름 느와르 영화의 터프한 (남자) 주인공들이 영화 내내 속으로 읊어대는 독백을 가리킵니다. 보통 감정이 절제된 무덤덤하고 우울한 어투이며 터프가이의 독백치곤 은근히 수다스러우며 괴상한 표현이 잦죠.

이 독백의 기원은 아무래도 대실 해미트일 것입니다. 해미트는 필름 느와르가 기원을 두고 있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문을 연 사람이죠. 그의 단골 주인공인 이름없는 탐정 콘티넨탈-오프가 등장하는 [피의 수확]을 읽어보면 이런 식의 수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통정리는 필요합니다. 해미트는 엄밀하게 말하면 '필름 느와르' 정서의 창시자는 아닙니다. 레이몬드 챈들러가 사도 바울 흉내를 내면서 해미트를 장르의 예수 취급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죠. 그는 충실한 하드보일드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후기작 [The Thin Man]은 거의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가 떠오를 정도로 발랄하고 현실도피적인 코미디입니다. 모범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일 것 같은 샘 스페이드도 [몰타의 매] 이외의 작품들을 보면 모범적인 퍼즐 미스터리의 명탐정 이미지에 더 가깝습니다. 결정적으로 해미트는 일인칭 화자인 탐정을 그렇게까지 많이 등장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하드보일드/필름 느와르'의 정서의 진짜 기원은 해미트의 추종자인 레이몬드 챈들러입니다. 로스 앤젤레스의 탐정 필립 말로우를 등장시킨 그의 장편 소설들은 이런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완성시켰지요. 꿀꿀하고 니힐한 남자 주인공, 사실적인 척 하지만 사실 비관적인 로맨티시즘으로 범벅이 된 도회지 배경 그리고 '필름 느와르 독백'.

챈들러에 의해 거의 완성된 이 관습은 그의 소설들이 영화화되면서 할리우드 영화에 이식됩니다. 책 한 권 분량의 수기였던 탐정의 고백은 이제 관객들을 위해 낭송되는 독백으로 변형되었지요. 내러티브의 기능이 제거되고 주인공의 현재 정신 상태의 기술만이 남자 분위기는 더 컴컴해지고 꿀꿀해졌으며 자아도취의 악취는 더 심해졌습니다.

해미트 때만해도 간결하고 명쾌한 액션의 기술이었던 이들의 독백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자신의 무게에 눌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챈들러 때만 해도 슬슬 괴상해질 가능성을 품고 있던 표현들은 50년대를 거치자 거의 괴물처럼 변했죠.

슬슬 여기서부터 패러디의 가능성이 발견됩니다. 데이빗 주커의 [총알 탄 사나이]는 이런 독백의 희극성을 극단적으로 과장한 작품이죠. 프랭크 드레빈의 다음 대사를 읽어보시겠어요?

"I'd known her for years. We used to go to all the police functions together. Ah, how I loved her, but she had her music. I think she had her music. She'd hang out with the Chicago Male Chorus and Symphony. I don't recall her playing an instrument or be able to carry a tune. Yet she was on the road 300 days of the year. In fact I bought her a harp for christmas. She asked me what it was."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각색한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영화 [씬 시티]도 이런 식의 독백들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의 독백들은 챈들러의 소설처럼 진지하지도 않고 [총알 탄 사나이]처럼 과장된 패러디도 아닙니다. 단지 이런 독백을 텅빈 필름 느와르 스타일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있을 뿐이죠. (05/06/14)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