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랑 똑같이 생긴 아이들

클로드 를루슈의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는 주인공들의 머릿수가 주연 배우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영화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간단해요. 제2차 세계대전부터 80년대 초에 이르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배우들은 부모들과 아이들 모두를 연기하거든요. 당연히 아이들은 모두 부모들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책 커버의 사진을 본 눈썰미 좋은 사람이 그 작가의 연락 끊긴 부모를 찾아주는 에피소드도 있었지요. 작가가 너무 늦었다고 한탄하자, 그 눈썰미 좋은 아저씨는 말합니다. "그러게 책을 좀 일찍 쓰셨다면..."

'부모랑 똑같이 생긴 아이들'은 '도플갱어' 클리셰의 변형입니다. 나름대로 타당한 설정이죠. 아이들은 부모들과 어느 정도 닮기 마련이니까요. 블라이드 대너와 기네스 팰트로를 보세요. 잉그리드 버그먼과 이자벨라 로셀리니는 어떤가요?

물론 동성의 부모와 완벽하게 닮은 자식들은 없어요. 아무리 닮았다고 해도 전달되는 유전자는 절반에 불과하니까요. 기네스 팰트로와 이자벨라 로셀리니도 어머니의 복제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모랑 똑같이 생긴 아이들'의 설정은 계속 등장합니다. 여전히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우선 [원더우먼]을 봅시다. 이 시리즈는 2시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를 떠나 70년대로 옮겨가는데, 여전히 스티브 트레버가 원더우먼의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단지 이번 트레버는 스티브 트레버 주니어죠. 같은 배우를 2시즌에도 등장시키기 위해 아빠와 똑같은 아들이라는 술수를 쓴 겁니다. [원더우먼] 시리즈에서는 아니었지만, 종종 이런 설정은 죽지 않는 초자연적인 주인공의 연애를 보다 긴 시간 동안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술수이기도 합니다.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주인공이 옛 사랑의 딸이나 아들과 사랑을 나누는 식이죠.

를루슈의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에서 이런 설정은 30여 년간의 긴 시간을 간편하게 요약정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부모와 자식들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다면 더 사실적이긴 하겠지만 산만해지겠죠. 이런 영화들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건 한 명의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혈통입니다.

이런 장치는 종종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혈통이지요. 부계혈통은 생물학적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모계혈통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를 부계나 모계를 통해 물려준다고 해도 하나의 강처럼 흐르는 생물학적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같은 배우들이 같은 부계성을 쓰는 캐릭터들을 몇 세대에 걸쳐 연기할 때는 그런 착각이 은근슬쩍 정당화됩니다. (06/05/2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