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저번 일요일에 그 악명높은 SBS 주말연속극 [하늘이시여]를 잠시 보던 저는 그 시리즈가 가장 뻔한 클리셰 하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거기에 '여자주인공만 모른다'라는 제목을 달면 그럴 듯 할 것 같아요.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여자주인공에게는 뭔가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문제는 주변사람들은 다 아는데, 당사자인 주인공만 모른다는 거죠. 왜? 다들 우리의 아름답고 연약하고 소중한 여자주인공이 그 사실을 알고 충격받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하늘이시여]를 보니 걱정하는 게 이치에 맞겠습니다. 거기서 시부모가 자신의 친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우리의 '아름답고 연약하고 소중한 여자 주인공'인 자경은 그 충격으로 임신한 애를 조산하고 심지어 실어증까지 걸려 버리더군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도 몽땅 작가의 설정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우리의 여자 주인공은 왜 그걸 자기 스스로 감당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종영한 [닥터 깽]은요? 왜 유나는 오빠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그렇게 늦게 알아야 하나요? 유나는 자경처럼 약해 빠진 사람도 아니고 임신도 안했는데? 물론 이유야 있죠. 하지만 드라마 내에서 그 역학 관계와 의미는 똑같습니다. 우리의 여자주인공은 결코 그 지저분한 비밀에 노출되어서는 안 돼요. 적어도 클라이막스와 갈등을 만들 때를 제외하면 말이죠.

'여자주인공만 모른다'는 출생의 비밀만큼이나 고루한 클리셰입니다. 더 나쁜 건 무척 퇴행적이라는 거죠. 이 설정에서 여자주인공은 아무리 씩씩하고 용맹해도 어쩔 수 없이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어린애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운명에 전혀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이죠. 여기서 여자주인공의 유일한 일은 클라이막스 때 기계적인 충격을 받는 것 뿐입니다.

물론 전 이 설정을 지나치게 일반화했습니다. 이 클리셰는 '나만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라는 보다 큰 공식에 통합될 수 있고, 이는 여자주인공의 역할을 전혀 축소시키지 않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시여]의 경우는 그와 전혀 상관이 없었지요. 적어도 제가 본 부분은요. (06/06/20)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