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도 안 이긴 거거든!

(여러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알아서 피하시길.)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도 안 이긴 거거든!]은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입니다. 물론 스포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객관적인 경쟁이 가능한 거의 모든 경기들이 이 안에 들어갑니다. 체스, 바둑, 철자 맞추기 대회, 게임 쇼, 카 레이싱...

내용은 간단합니다. 재능이 넘치는 우리의 주인공은 충분히 1등을 할 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아요. 결정적인 순간에 일부러 실수를 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아니면 노골적으로 경주를 포기하지요.

도대체 왜? 이유는 많습니다.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승부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죠. [카]에서는 승부보다 어떻게 이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고요. [그레이트 레이스]에서는 승부보다 옆 자리에 앉은 예쁜 여자 기자의 사랑을 얻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네, 이런 식으로 끝나는 영화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엔 승부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 그것이 사랑이건, 조국이건, 명예건요. 그러나 이건 역시 "세상엔 승부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라고 외치긴 하지만 일부러 지는 대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싸워서 2등을 쟁취하는 [브링 잇 온]이나 [로키] 같은 영화들과는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설정이 스포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주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형식 때문이지요. 스포츠물은 결말이 뻔합니다. 주인공이 이기거나 지죠. 이기는 건 만족스럽지만 반복하다보면 지겹습니다. 지는 결말은 관객들이 싫어하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브링 잇 온]이나 [로키]처럼 처음부터 목표를 낮게 잡거나 아니면 지는 핑계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승부보다 중요한 무언가'는 가치있는 주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패배의 핑계입니다. (06/08/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