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박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전 마크 러셀의 블로그에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평을 읽었어요. 그는 각본의 평이함과 진부함을 지적하기 위해 영화 클라이막스에 아주 도식적인 클리셰가 삽입되었다는 걸 예로 들더군요. 어떤 거냐고요? 일순이 영군에게 드디어 밥을 먹이는 장면이죠. 영군은 숟가락에 담은 밥 위에 동치미를 하나 얹고 부들부들 떨며 그걸 입 안에 가져갑니다. 몇 번의 주저와 실패 끝에 드디어 밥을 입에 넣고 씹었다가 삼키는 영군. 바로 그 순간, 병원 식당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환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칩니다.

우린 여기에 '모두 박수!'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식은 간단하죠. 주인공은 지금 엄청난 무언가를 하려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자기만의 도전일 수도 있고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여간 그건 주인공 개인의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도전이 시작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끈 뒤로, 그건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걸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나 연극을 보는 관객들처럼 주인공의 도전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이 성공을 거두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거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클라이막스는 정말 모범적인 '모두 박수!' 장면입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까요? [러브 액추얼리]에서 콜린 퍼스 캐릭터가 연기한 영국인 작가가 포르투갈 가정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어떨까요? [플라이 대디]에서 이문식 캐릭터가 버스와 경주하는 장면은 어떻고요? 뮤지컬이나 스포츠 영화 장르에서도 이런 예들은 많습니다. '쇼' 자체가 소재이기 때문에 극중 관객들이 극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왜 이런 장면들이 많이 사용될까요? 그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혼자하는 고백이나 승리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군집동물인 우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승리에 동참해주길 바라죠. 그 박수 속에서 주인공이 거둔 성취의 스케일과 의미가 더 커지는 것 같은 착각도 생기고요. 실제로 커지기도 해요. 주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는 일종의 영화적 오케스트라 역할을 하니까요. (06/12/1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