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장르 교훈

모든 장르들은 자기만의 교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들은 종종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돌연변이 괴물들이 등장하는 SF는 과학을 잘못 다루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고하고요. 뱀파이어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 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끔찍한지 가르칩니다. 이런 식의 예는 끝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치있는 교훈입니다. 꼭 지금 와서도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죠. [그들!]의 거대개미들은 지금 와서 보면 그냥 황당하니까요. 하지만 그 개미들은 1950년대 사람들이 냉전과 핵에 대해 어떤 공포를 품고 있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익합니다.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고 그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작품들을 통해 단순한 공포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도 있고요.

문제는 이들이 도식화될 때 발생합니다.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도구로 장르를 택했을 때, 그 결과는 대부분 좋습니다. 하지만 일단 장르물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거기에 딸려오는 주제를 패키지로 가져온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고가 제거되는 것이죠. 많은 싸구려 장르물들이 이 함정에 빠집니다. 오래전에 도식화된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그게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줄 착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더 이상 교훈이 아닙니다. 장르에 추가된 깃털 장식에 불과해요. 철학이 아니라 패션인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 중 제가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은 [중천]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사후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기억과 삶의 경험에 대해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고 있지요. 삶과 죽음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등장하고 이들이 엮어지는 걸 들어보면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 같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금만 그 대사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거기에 사색의 깊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영화는 장르가 규정해 놓은 주제에 생각 없이 복종하느라 그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렸거든요. 당연히 이야기는 장르 시작 이후 골백번 반복되었던 틀 안에서 뱅뱅 돌 뿐, 의미있는 결과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06/12/19)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