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집착증

용어집착증은 전문 분야에 관련된 작품을 쓰는 아마추어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사실 아마추어만이 저지르는 것도 아니죠. 모두 하니까.

그럼 이건 도대체 뭣이냐. 별로 복잡한 게 아닙니다. 특정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의 가치를 과대 평가하고 그 용어나 정의를 힘주어 반복해 말하는 게 그 용어가 가리키는 개념을 내용에 녹여내는 것보다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거죠.

가장 최근 예는 KBS-2의 새 미니 시리즈 [마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사이코메트리'라는 단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한 번 보세요. 사실 이 단어는 자주 사용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더 자연스럽죠. 일단 낯선 단어이고 개념은 예상외로 설명이 쉬우니까요. 그런데도 그들은 죽어라 이 낯선 외래어를 반복합니다. 그런 개념을 쓰면 자신들이 시청자들로부터 우위를 점유한다고 믿는 거죠. 그 때문에 대사뿐만 아니라 홍보물에서도 계속 써먹는 거예요.

아마추어 장르 작가들에게서도 이런 경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판타지 작가들은 그렇죠. 많은 판타지 작가들이 자기가 만든 독창적인 내용에 용어들을 녹여내는 대신 기성품 개념들을 그대로 반복하며 그 익숙한 용어들을 끝없이 암송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신경쓰는 것이 내용이나 주제가 아니라 아니라 용어들에 대한 자신의 페티시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은 쉽게 전파되어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장 남용되는 표현들 중 하나로 '뫼비우스의 띠'를 들 수 있겠군요. 소설이나 평론(특히 평론)에서 '뫼비우스의 띠'라는 표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한 번 검토해 보세요. 대부분 뻔한 순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이 표현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에서 중요한 건 순환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한 번 꼬여서 앞면과 뒷면의 차이가 없다는 거죠. 쓰지 않아도 되는 표현이 순전히 폼잡기 위해 불려나와 고생하고 다니는 겁니다.

이런 경향의 변주로서, 특히 일본대중문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서구식 이름에 대한 집착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라퓨타]나 [고양이의 보은]과 같은 영화를 보면 길고 장황한 자신의 가짜 서양식 이름을 요란하게 읊어대며 그 폼에 자기가 도취되어버리는 캐릭터들이 꽤 많이 나오죠? 그 역시 페티시즘이죠, 뭐. (07/03/2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