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위장 탈출법

'커플 위장 탈출법'은 클리셰 중의 클리셰입니다. 지금 와서는 절대로 진지하게 쓰일 수 없는 클리셰죠. 하긴 그런데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들이거나 자기네들이 얼마나 진부한지 모르는 사람들이죠.

설명이 필요할까요? 필요하다고 치죠. 이건 다음과 같습니다. 악당들에게 쫓기는 남자가 있습니다. 큰 거리로 뛰어나온 그는 악당들을 속이기 위해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아무 여자를 잡아 갑자기 그 여자를 끌어안고 키스합니다. 악당들은 이 즉석 연인들을 지나치고 남자는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물론 여기에도 변주는 있습니다. 쫓기는 쪽이 여자일 수도 있고 두 사람 모두일 수도 있고 둘이 처음 만났을 수도 있고 원래부터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요.

이 설정이 한 동안 인기가 있었던 건 강한 육체적인 서스펜스에 로맨스나 섹스를 추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당에게 쫓기느라 여자 만날 기회가 없었던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파트너를 붙여주는 핑계가 될 수 있고요. 물론 이는 일방적인 성추행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로맨스로 흘러갑니다.

이 설정은 우리나라에선 진지하게 쓰일 수가 없습니다. 파리라면 모를까, 길가에서 포옹하고 키스하는 연인들은 눈에 굉장히 뜨이거든요. 위장의 기능을 못하는 겁니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설정 자체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코미디에서밖에 사용될 수 없지요. 얼마 전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유미와 민용이 달아나는 장면에서 이를 꽤 정공법으로 다루었지만 그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시트콤이 아니었다면 차마 민망해서 그럴 수가 없었을 거예요. (07/06/0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