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자기 자백

자포자기 자백은 주로 미국 텔레비전 수사극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주인공 형사가 40여분간의 수사 끝에 드디어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증거를 잡습니다. 그는 방영시간이 끝나기 5분 전에 범인을 앞에 놓고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고 제시합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죄를 주장하며 시니컬한 미소를 흘리고 있던 범인은 그 순간부터 갑자기 태도가 바뀝니다. 마치 해탈이라도 한 것처럼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살인 동기와 과정을 털어놓는 거죠.

조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지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우선 형사가 제시하는 증거가 그렇게 결정적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이라고 해도 갑자기 용의자가 태도를 그렇게 바꾸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죠. 아마 그들은 대부분 이전의 삐딱한 태도를 유지하며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할 겁니다.

수사극의 범인들이 이처럼 협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거야 이야기를 맺기가 편하니까요. 텔레비전 드라마의 러닝타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45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줘야죠. 그러는 데엔 '자포자기 자백'처럼 깔끔한 방법은 없습니다. 종종 인공적이고 억지스럽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사치입니다.

일부러 이 규칙을 깨트리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피고의 무죄선언으로 끝나는 [프라임 서스펙트]가 대표적인 예죠. 그리고 텔레비전 수사극이라고 모두 '자포자기 자백'으로 끝나는 건 아니죠. 단지 그런 경우가 많을 뿐이지. (07/09/0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