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는 연기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게 있군요. '망가지는 연기'는 배우들의 연기 클리셰가 아닙니다.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클리셰죠. 그것도 아주 극악스러울 정도로 따분한 종류입니다. 잘생긴 배우들이 외모를 망가뜨려야만 연기 변신에 성공한다는 일종의 미신적 믿음이죠.

많은 클리셰들이 그렇듯, 이것도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자신의 예쁜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연기의 폭이 좁아지죠. 캐릭터가 지옥 밑바닥을 구르고 있다면 작품의 진실성을 살리기 위해 외모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죠.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슬슬 의심스러워지는 단계는 배우들이 이를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미모의 배우가 일부러 외모가 망가지는 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재평가를 노리는 거죠. 가장 유명한 예는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과 [몬스터]의 샬리즈 테론입니다. 두 사람 모두 외모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연기를 한 결과 아카데미상을 받았죠. 그들의 수상이 부당했냐고요? 아뇨. 둘은 모두 열심히 했고 연기 결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망가지기가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죠.

여기까지도 사실은 괜찮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좋은 거죠. 그러는 동안 정말 평범하게 생긴 배우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해도요. 언제부터 영화판이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는 곳이었답니까?

문제는 이것이 고정관념이 되어 '연기를 잘하는 것'이 '외모나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비평가들이나 관객들이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조금만 봐도 논리적 오류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드백이 되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을 강요할 때는 정말 바보스러워집니다. 결과는? 우린 여자배우들이 지저분한 차림으로 거실에 나와 양푼 비빔밥을 먹는 광경을 끝도 없이 봐야 합니다. 지겹다고 말해도 몰라요. '망가지기'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른 기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망가지는 것은 정말 부수적입니다. 중요한 건 캐릭터예요. 한예슬이 [환상의 커플]에서 그처럼 인기를 끌었던 건 그 사람이 '망가진'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 캐릭터가 어쩌다보니 그리 패셔너블하지 않은 차림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고, 그 역시 캐릭터에 잘 맞아 떨어졌던 것뿐이죠. 이건 사실 망가지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거예요. 한예슬은 그냥 예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것뿐이죠.

제발 제 말을 믿으세요. 그들이 요구하는 '망가짐'에 대한 요구를 따른다고 배우들의 연기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좋은 건 이미 가지고 있는 배우와 캐릭터의 가능성을 가장 잘 살리는 길을 찾는 것이지 주인공에게 무조건 양푼비빔밥을 먹이는 게 아닙니다. (07/12/0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