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한 음악

대한민국 영화음악계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미신이 있으니, 그 중 하나는 영화음악 작곡가가 자신이 코믹한 음악을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감독이 자신의 시시껄렁한 코미디 장면을 코믹한 음악을 이용해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미신들이 아직까지도 남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이건 너무나도 단순한 착각이라 교통법규 교육 수준의 간단한 암기교육만으로도 충분히 타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간단합니다. 그냥 안 쓰면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쓰이는 것은, 순전히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입니다. 촬영과 편집이 완결되었을 때 신의 강화를 위해 사용할 있는 것은 영화음악뿐입니다. 쓰고싶은 게 당연하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먹히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코미디는 섬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멜로드라마나 서스펜스물은 음악으로 충분히 강화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런 감정이 외부에서 강요되어도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니까요(이것도 정도의 문제이긴 합니다. 최신작 [그 남자의 책 198쪽]은 자칭 '서정적 음악'의 무식한 강요가 얼마나 영화를 끔찍하게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하지만 코미디의 경우 관객들은 그 감정의 주체가 되길 바랍니다. 결코 영화나 드라마가 '이 장면은 웃겨요!'라고 선언해서는 안 돼요. 그것은 코미디언이 자기 농담에 먼저 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문에 텔레비전 코미디에서 웃음 트랙이 발명된 것이죠. 웃음 트랙은 배경 음악의 강요와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작정하고 강요한다는 느낌을 교활하게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소위 걸작 코미디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해보세요. 코믹한 장면에 코믹한 음악을 쓰는 영화는 예상 외로 많지 않습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장면을 볼까요? 잭 레몬과 조 E. 브라운이 그 말도 안 되는 마지막 농담을 주고받을 때, 아돌프 도이치의 음악은 시치미 뚝 떼고 심각한 톤을 유지합니다. 조 E. 브라운이 유명한 마지막 라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의 테마인 [La Cumparsita]가 결말을 때리긴 하지만, 이 역시 따로 보면 결코 코믹한 음악이라고 할 수 없죠. 우리가 이 음악을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전에 나왔던 두 사람의 탱고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고 갑작스러운 음악의 변화가 대조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코믹한 음악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닙니다.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핑크 팬더] 시리즈의 주제 음악은 시작부터 코미디 음악을 의도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보세요. 이 음악은 결코 노골적으로 관객들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늘 익살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침착하고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어요. 웃을 곳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먼저 웃지도 않아요.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려면 [바람의 화원] 8회의 얼굴 개그 신을 보면 됩니다. 이 장면은 코미디로서 괜찮습니다. 대단한 창의성이 투여된 건 아니지만 실력있는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 근육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좋은 코미디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하지만 이 장면에 사용된 '밝고' '귀여운' [생도청의 아침] 음악은 그 장면의 매력을 반쯤 발로 밟아 죽여버립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생도청의 아침]은 최악의 영화음악입니다. 멜로디와 리듬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장면을 정의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정의의 범위가 극악스러울 정도로 좁지요. 이런 음악은 그냥 쓰면 안 됩니다. 진공 처리를 하는 게 최선이고 정 대사가 없는 게 서운하다면 리듬만 간단히 살려주면 됩니다. 볼륨을 줄이고 플라스틱 자로 리듬에 맞추어 책상을 두들겨도 저것보다는 낫지요. 의심나면 한 번 실험해 보세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한 코미디 음악의 예가 소수이지만 있습니다. 이병우가 작곡한 [괴물]의 주제곡이 그렇지요. 제 생각엔 이 음악이 성공적인 이유는 장르가 공식적으로 코미디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뒤뚱거리는 음악이 돌연변이 괴물과 그 괴물에 맞서 싸운 투박하고 어설픈 가족의 모습과 절묘한 싱크를 이루기 때문에 단순한 강요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이죠. 코미디 음악이 성공적이려면 거리두기는 필수적입니다.

그렇다면 노골적인 코미디 음악이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뇨, 꼭 그렇지 않아요. 대표적인 예로 칼 스털링이라는 거장이 있지요. 그가 작곡한 [래빗 파이어]음악을 한 번 들어 보실까요? 하지만 이 역시 보기보다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선 스털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익살로만 일관하지 않아요. 진지한 음악을 과장하기도 하고, 개별 장면의 표면적인 의미에는 딱 맞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넣기도 하며, 액션 장면에서는 순수한 속도와 에너지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스털링은 결코 게으르지 않으며 한가지 자극만을 끝까지 밀고가지 않습니다. 스털링의 음악은 벅스 버니만큼이나 바쁘고 교활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방법만이 노골적인 코미디 음악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냥 코믹한 분위기와 효과만을 기계적으로 읊는 음악은 농담 도중 '나 웃기지!'를 무한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웃기지 않으면 거짓말이고 웃기면 불필요하죠.

교훈은 간단합니다. 맨시니나 스털링처럼 될 수 없다면 그냥 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영화들이 구조받을 수 있지요. (08/10/2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