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자로서의 예술가, 모방자로서의 영화

이번 클리셰는 [삶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와 비슷한데 그보다 더 피상적입니다. 주로 화가들 이야기에게 자주 쓰이죠. 보통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이 사실은 그가 직접 목격한 실제 상황에 바탕을 둔 것인데, 관객들이 직접 목격하게 되는 그 상황은 화가가 그린 최종 작품과 모양과 구성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 예로 [미인도]에서 이런 설정이 쓰였습니다. 이 영화에 따르면 [단오풍정]과 [이부탐춘]과 같은 신윤복의 작품들은 화가가 직접 목격한 실제 장면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영화는 원작의 인물과 구도를 그대로 복사해 실사 화면에 재현하지요.

이해가 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주얼 매체이니 이 매체가 화가라는 소재를 택했다면 화가의 작품을 재현하거나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 건 당연하지요. 회화의 정교한 묘사는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그만큼이나 재미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사는 기본적으로 얄팍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화가는 카메라가 아닙니다. 보는 걸 그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지요. 아무리 모델이 되는 사람이나 풍경이 존재한다고 해도 최종 작품이 나오려면 그 재료들은 예술가의 두뇌를 거쳐 재해석되고 재조립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바람의 화원]의 [단오풍정] 에피소드가 [미인도]의 [단오풍정] 에피소드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신윤복이 훔쳐보는 동자승까지 주변 풍경을 그대로 모사하는 [미인도]와는 달리 [바람의 화원]에서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 담지 않죠. 물론 텔레비전에서 젖가슴을 내놓은 여자들을 등장시킬 수 없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윤복이 보는 경치와 실제 [단오풍정]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신윤복은 여장을 하고 빨간 치마 아가씨와 함께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까요! 과장된 설정이지만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에 대한 보다 진실에 가까운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모사가 화가의 경우에만 나오는 걸까요? 아뇨, 다른 매체에서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문학요. 하지만 티는 덜 납니다. 어떤 상황을 문장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재해석의 과정인 걸요. 음악에서도 가끔 쓰이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식의 모사가 클리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가와의 직접적인 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루이스 브뉴엘의 [비리디아나]에 나오는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흉내가 클리셰가 아닌 이유는 영화가 다 빈치와 아무런 상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08/11/0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