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로맨스

여행지 로맨스의 공식적인 존재 이유는 여행에 대한 관객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지긋지긋한 일상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여행을 떠나면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점에서 탈출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요. 여행지 로맨스물들은 그 믿음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비공식적인 이유가 더 중요합니다. [로마의 휴일]의 무대가 로마가 된 건 순전히 마셜 플랜 때문이었죠. [로맨틱 아일랜드]의 무대가 보라카이가 된 건 필리핀 관광청의 도움을 얻어 제작을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고요. 영화나 드라마의 전부나 일부를 해외에서 찍으면 제작비나 홍보 측면에서 얻는 바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연스러운 취사 선택이 어렵습니다. [007] 영화처럼 제작비가 넉넉하고 유명하다면 로케이션 활용이 자유롭겠지만, 여행지 로맨스 영화들은 대부분 그보다 작고 가난합니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쉽게 관광지 홍보로 넘어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대가 되는 지역의 지형지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지요.

이런다고 영화가 늘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로마 관광지를 홍보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불평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것도 전문가들의 세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전문가들을 갖추지 않은 영화들은 제대로 된 홍보물도 아니고 완벽한 로맨스도 아닌 어설픈 단계에서 끝나기 쉽지요. (08/12/1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