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혼혈

[스타 트렉]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죠. 이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스팍도 벌칸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니까요. 그럼 이건 [스타 트렉]의 전매 특허냐? 그런 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설정은 옛날 SF엔 흔해 빠졌어요. [스타 트렉]이 눈에 뜨이는 건 그 작품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옛날 SF'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유물인 거죠.

척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않습니까? 아무리 외모가 비슷하다고 해도 외계 종족과 지구인이 섹스를 해서 아기를 가질 가능성은 그냥 제로입니다. 지구인과 소나무가 섹스해서 아기를 낳을 가능성이 그보다 높겠죠. 이런 걸 알려고 생물학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옛날 SF 작가들은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단 말이에요. 이걸 보면 SF작가들이 아무리 자기네들이 과학적이라고 우겨도 어쩔 수 없는 시대와 편견의 산물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들은 한마디로 '외계인'이 '인간'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요새는 이런 식의 혼혈 묘사는 거의 그려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혼혈들은 등장하지만 섹스가 아닌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죠. 여전히 그래야 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핑계는 있는 셈입니다. [스타 트렉] 시리즈 역시 종종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장 유명한 시도는 지구인이 조우한 모든 외계인들이 알고 보면 한 종족의 후손들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작가들은 이 주장을 과격하게 밀고 갈 생각도 없는데, 그걸 따라가다가 발생하는 문제점들 역시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09/06/2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