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주연
안느 테세드르....잔느
Anne Teyssèdre....Jeanne
플로랑스 다렐....나타샤
Florence Darel....Natacha
위그 케스테....이고르
Hugues Quester....Igor
엘로이즈 베네....에브
Eloïse Bennett....Eve
소피 로뱅....가엘
Sophie Robin....Gaelle

잔느와 나타샤

고등학교 철학교사인 잔느는 친구의 파티에서 음악원 학생인 나타샤를 만납니다. 한동안 머물 곳이 없어 고민 중이던 잔느는 나타샤의 아파트에 잠시 얹혀지내게 되지요. 둘은 곧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아무래도 나타샤에게는 뭔가 숨은 계획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 맘에 들지 않는 아빠의 여자 친구 에브를 쫓아내고 대신 맘에 드는 잔느를 아빠의 애인 자리에 앉히려는 계획 말이에요.

[봄 이야기]는 에릭 로메르가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새 시리즈 [사계절 이야기]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희극과 격언] 시리즈보다 살짝 비싸졌지만 내용과 형식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죠. 여전히 주인공들은 자잘한 생활 속의 딜레마에 말려든 깔끔하고 예절바른 부르주와 파리 여성들이고, 이들의 이야기는 로메르 특유의 지적이고 차분한 스타일을 통해 묘사됩니다.

로메르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이들의 딜레마는 곧 자신들의 사유의 대상이 됩니다. 주인공인 잔느가 철학교사이기 때문에 설정은 거의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에서도 상당히 학구적인 주제로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재미있는 건 로메르가 차분하게 묘사하는 일상의 느낌과 플롯의 대조입니다. 자세히 보면 [봄 이야기]의 플롯은 상당히 장르적입니다. 사라진 목걸이의 미스터리, 어긋난 만남과 오해가 일으키는 드라마로 구성된 이야기는 거의 19세기 프랑스 연극에서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이런 것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멜로드라마틱한 느낌을 잃고 로메르 특유의 정중함, 차분한 사실주의, 도덕적 성찰과 결합하면 아주 독특한 느낌이 납니다.

사실 이 양반의 작품은 언제나 그래왔어요. 로메르의 영화들은 주로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한 교양있는 은둔자의 비전이라는 느낌이 강하니까요. 로메르 영화에서 교양은 삶의 재료입니다. 그것이 철학적 성찰이건, 구시대의 문학에서 가져온 드라마틱한 공식이건 간에요.

[봄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도 그런 '교양'의 힘입니다. 그것이 칸트의 철학이건, 슈만의 피아노곡이건 간에요. 자연스러워보이지만 완벽하게 문명과 이성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봄 이야기]의 세계는 무척이나 사람 마음을 안심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 마치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현대 독자에게 그런 것처럼요. (02/03/07)

DJUNA

기타등등

[사계절 이야기]는 [겨울 이야기], [여름 이야기], [가을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왜 겨울이 먼저냐고 묻지 마세요. 국내에는 [여름 이야기]와 [가을 이야기]가 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