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잭 아놀드 Jack Arnold

주연
리처드 칼슨....데이빗 리드
Richard Carlson....David Reed
줄리 애덤즈....케이 로렌스
Julie Adams....Kay Lawrence
리처드 데닝....마크 윌리엄즈
Richard Denning....Mark Williams
안토니오 모레노....칼 마이아
Antonio Moreno....Carl Maia
네스토르 파이바....루카스
Nestor Paiva....Lucas
위트 비셀....에드윈 톰슨
Whit Bissell....Edwin Thompson
버니 고지어....지
Bernie Gozier....Zee
헨리 A. 에스칼란테....치코
Henry A. Escalante....Chico

[검은 산호초의 괴물]의 도입부는 [잃어버린 세계]와 유사합니다. 고생물학자 칼 마이아가 아마존에 발굴작업을 하다가 데븐기 지층에서 인간과 유사한 양서류의 화석 일부를 발견합니다. 그걸 뚝 잘라서 연구소로 가져온 그는 남은 화석을 파내기 위해 연구소장인 마크 윌리엄즈, 어류학자인 데이빗 리드, 리드의 약혼녀인 케이 로렌스를 끌고 다시 아마존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저런... 남겨놓은 원주민 조수 둘이 정체불명의 괴물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군요. 그리고 그 괴물은 바로 데븐기부터 지금까지 진화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아가미 인간이었습니다.

후반부는 [킹콩]을 닮았습니다. 아가미 인간은 자기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인 탐사대원들을 하나씩 살해하지만 아무래도 하얀 수영복을 입은 케이 로렌스에 대해서만은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거든요. 결국 케이는 아가미 인간에게 납치당하고 남은 사람들은 케이를 구출하려 나서죠.

[검은 산호초의 괴물]과 [킹콩]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킹콩]만큼 혁신적인 영화도 아니고 그만큼 특수 효과 역사에 기여한 작품도 아니지요.

그러나 [검은 산호초의 괴물]은 나름대로 도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는 액션의 절반을 수중 촬영으로 커버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상당한 모험이었죠. 이 영화가 나온 해는 1954년. 아쿠어렁이 제대로 보급된지 10년도 안된 터였습니다. 요새야 스쿠버 다이빙이 흔한 유행이고 텔레비전을 틀기만 해도 수중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으니 물 속 구경이 그렇게 신기하지는 않지만, [검은 산호초의 괴물]이 당시 관객들에게 보여준 구경거리는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구경거리는 단순한 평면 그림이 아니었지요. 이 영화는 원래 입체 영화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수중 입체 모험담이란 말이죠.

특수 효과도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덩치 큰 남자 둘이 괴물 옷을 뒤집어 쓰고 연기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 괴물 옷은 아주 잘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가미 인간 옷의 디자인과 테크닉이 후대의 괴물 영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죠.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가미 인간은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할리우드 괴물이 아닙니까?

잘나가는 선배들한테서 슬쩍한 스토리라고 하지만 이 영화가 후대에 끼친 영향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로 [죠스]를 보세요. 수영하는 줄리 애덤즈를 괴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유명한 장면이 [죠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뒤에 나온 수많은 괴물 영화에 기초적인 플롯을 제공해준 영화도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아하, 그게 역사적 가치군요. 그렇다면 그냥 영화로서는 어떨까요? 이 작품은 여전히 현대 관객들을 매료시킬만한 작품일까요?

이 영화에서 [에일리언] 식 세련된 공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긴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들이 50년대 괴물 영화를 보지는 않았을테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현대 괴물 영화의 잔혹함에 질려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는 오히려 더 반가울 수도 있지요. 소박한 수중 액션 장면도 그 나름대로의 솔직한 즐거움을 제공해주고요.

게다가 아가미 인간이라는 괴물의 캐릭터는 무정한 살인 기계인 요새 괴물들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우선 관객들은 그의 살인을 이해합니다.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까?

1950년대에 제작된 이 영화의 어조가 현대 환경주의와 상당히 가깝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괴물과 인간의 싸움은 자연과 환경 파괴자의 대립처럼 보입니다. 인간 내부의 갈등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노려 자연을 약탈하려는 쪽과 자연을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두고 그 존엄성을 인정하자는 쪽의 대립이니까요. 덕택에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관객들은 새디스틱한 파괴의 즐거움이 아닌 서글픈 동정을 느끼게 됩니다.

케이와 괴물의 묘한 관계가 영화에 부여하는 묘한 성적 느낌 역시 꽤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괴물이 정말로 케이에게 반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미녀와 야수]의 고전적 모양새를 발견할 수밖에 없죠. 케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녀를 따라가는 괴물의 모습을 보세요. 분명 여기엔 뭔가가 있습니다. 괴물에게 그게 순전히 호기심이었다고 해도 관객들에게는 절대로 그렇지 않죠. 하긴 그런 모호함이 영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검은 산호초의 괴물]은 즐거운 구경거리입니다. 꼭 노스탤지어에 빠진 구식 SF광이 아니어도 즐길 재미는 충분한 작품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를 진짜로 즐길 수 있는 관객들은 당시 50년대의 분위기를 잘 알고 거기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00/11/21)

DJUNA

기타등등

1. [7년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캐릭터가 지하철 통풍구 바람을 맞기 전에 보러간 영화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2. 흔히 사용되는 [검은 산호초의 괴물]이라는 제목을 썼는데, 이 영화에서 lagoon은 산호초가 아니라 석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