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S. (2003) * * *
감독
앤젤라 로빈슨
Angela Robinson
주연
태미 린 마이클스....맥스
Tammy Lynn Michaels....Max
클레어 크레이머....루시 인 더 스카이
Clare Kramer....Lucy in the sky
알렉스 브레킨리지....에이미
Alex Breckenridge....Amy
샨티 로우리....도미니크
Shanti Lowry....Dominique
질 리치....자넷
Jill Ritchie....Janet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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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입 수능 시험에는 특별한 목적으로 삽입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은 학생들의 수학 능력 대신 사기, 기만, 살인, 격투 실력 같은
능력들을 측정하죠. 정부에서는 이 시험을 통해 발탁된
네 명의 고등학생들을 수퍼 스파이로 훈련시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들과 싸우게 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바로
D.E.B.S.!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룰 수도 있습니다. 왜 안된단 말이에요?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일차적인 선이 있고 그 선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도 다를 게 없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사실 이런 설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녀 삼총사]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대중들은 이 시리즈와 아류작들의 재방송들을 끝도 없이 반복해보면서 자기네들만의 캠피한 취향을 추가했습니다. 최근에 나온 [V.I.P.]나 [She-Spies]와 같은 시리즈를 보면 그런 설정이 20여년 동안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어요. 진지함은 줄어들고 페티시즘과 장르 농담이 늘어난 거죠.
앤젤라 로빈슨의 단편 영화 [D.E.B.S.]도 다를 게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솔직하죠. 이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액션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페티시즘과 섹스입니다.
영화는 가상의 텔레비전 시리즈 [D.E.B.S.]의 562회 에피소드를 자칭하며 시작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벌써 네 주인공 중 한 명인 에이미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대악당 루시 인 더 스카이의 인질이 되어 있습니다. 남은 세 명의 D.E.B.S. 요원들이 루시의 아지트로 잠입해서 에이미를 구출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지요. 루시가 에이미를 끝도 없이 납치하는 진짜 이유는 둘이 몰래 사귀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대악당이고 다른 한쪽이 수퍼 스파이이기 때문에 둘이 오붓하게 만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거든요.
노골적인 노출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포르노입니다. D.E.B.S.의 설정이나 액션은 모두 복장 페티시(네 주인공들은 모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카톨릭 학교 교복만 입고 다닙니다)나 본디지 페티시를 양념 삼아 루시와 에이미의 섹스를 끌어가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니까요. 단지 구체적인 묘사가 적기 때문에 영화의 인상은 t.A.t.U. 뮤직 비디오와 미국 맥주 광고를 믹스한 것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포르노인 것만큼 소프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포르노 [D.E.B.S.]에서 액션물 설정이 페티시즘을 자극한다면 소프 오페라 [D.E.B.S.]에서 이 설정은 코미디 쪽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루시와 에이미는 데이트 중인 다른 커플들처럼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와 상대하게 되는데, 그게 세계 정복 대악당 플롯의 황당함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지요.
앤젤라 로빈슨은 [D.E.B.S.]를 경박하고 노골적이며 즐거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한데, 그건 로빈슨이 처음부터 자신의 얄팍한 의도를 감출 생각도 없고 쓸데없이 영리한 농담을 삽입해 캠피함을 정당화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죠. 다섯 주연 배우들 역시 자신의 캐릭터들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즐기고 있고요. 특히 커플로 나오는 클레어 크레이머와 알렉스 브레킨리지는 죽이 굉장히 잘 맞습니다.
덕택인지, 이번 선댄스에서 [D.E.B.S.]는 가장 큰 상업적 성과를 올린 작품이었습니다.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고 장편으로 리메이크할 기회까지 잡았거든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미녀 삼총사] 아류작들과 다른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말이에요. (03/04/15)
DJUNA
기타등등
1. 로빈슨은 원래 이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먼저 그렸다고 해요.
2. 이 영화는 전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잠시 언급했던 할리우드 여성 영화 집단인 Power-Up의 도움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제이미 배비트 역시 수퍼바이저로 참가했다고 해요.
3. 다들 아시겠지만, 태미 린 마이클스는
멜리사 에더리지의 여자 친구입니다. 클레어
크레이머는 [버피]의
글로리이고, 알렉스 브레킨리지는 [버피]의 키트지요.
리메이크 때도 이들은 그대로 남겨두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