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튜어트 고든 Stuart Gordon

주연
에즈라 고든....폴
Ezra Godden....Paul
프란시스코 라벨....에제키엘
Francisco Rabal....Ezequiel
라켈 메로뇨....바바라
Raquel Meroño....Barbara
마카레나 고메스....우시아
Macarena Gomez....Uxia
브렌든 프라이스....하워드
Brendan Price....Howard
비르기트 보파룰....비키
Birgit Bofarull....Vicki

1.

데이곤의 교회

H.P. 러브크래프트는 물고기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해요. 음식에 생선이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면 질겁을 했다고 하더군요. 맛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물 속에서 건져낸 그 생물들의 축축하고 미끄러운 느낌이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느껴졌던 것이겠죠. 그런 사람이 공포 소설가가 되었으니, 고대의 물고기신 데이곤을 소재로 여러 편의 단편을 쓴 것도 당연합니다.

데이곤은 러브크래프트 세계에 깊숙히 박혀 있지만 그의 창조물은 아닙니다. 다곤 또는 다간이라고 불리우는 이 물고기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널리 숭배되었죠. 구약에도 이 신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시간 남으시면 [판관기]를 뒤져 보세요. 아주 낯익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 이 신의 신전이 등장할 겁니다.

우리에게 데이곤은 그렇게 대단한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냥 다신교의 여러 잡신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 이교의 신이 풍기는 느낌은 상당히 강렬하고 불쾌합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자기의 신화에 끼워넣고 싶어할 정도로요.

2.

[데이곤]은 요새 엉뚱하게도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브라이언 유즈나와 스튜어트 고든의 신작입니다. 그들의 두번째 '스페인 영화'고요.

제목은 [데이곤]이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동명의 단편보다는 러브크래프트의 또다른 단편 [The Shadow over Innsmouth]에 가깝습니다. 뭐, 거기에도 데이곤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니까 [데이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닙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네 명의 미국인 관광객들이 요트 여행을 하다가 스페인의 어느 어촌에 좌초되면서 시작됩니다. 구조를 요청하러 마을에 간 커플은 그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사람 가죽을 뒤집어 쓴 물고기 괴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들은 중간에 만난 유일한 인간 생존자한테서 그 마을이 물고기신 데이곤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네, 그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물고기 인간 말고도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게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튜어트 고든은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초기의 러브크래프트 각색물만큼 성과가 좋은 작품들은 없었잖아요.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누리고 싶어하는 중년 남자가 이전의 공식을 다시 끄집어내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죠. 마치 중년의 위기를 겪는 아저씨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사는 것처럼요.

영화는 [리애니메이터] 당시의 정신나간 오락을 재현하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꽤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긴 해요. 하지만 영화는 난도질의 블랙 유머보다는 러브크래프트식 컴컴한 악몽을 구축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종종 어처구니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코미디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군요. 아마 의도했다고 해도 드라마 비중이 더 컸을 겁니다.

그렇다면 [데이곤]은 [리애니메이터]만큼 흥미로운 영화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진지함은 이 영화를 보다 러브크래프트풍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데이곤]이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장엄한 허풍을 재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든 초기작의 매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무척이나 고든답고 그만큼이나 러브크래프트풍이지만 [리애니메이터] 당시의 매력은 없어요.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시도도 나쁜 대사나 공감가지 않는 설정을 노출시키고요.

그래도 영화는 잔인무도한 폭력에서부터 혐오스러운 섹스에 이르기까지, 요새 대작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쾌한 오락을 제공해주는 데 그럭저럭 성공하고 있습니다. 전 결말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해리 놀즈처럼 그런 결말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예요. (02/07/19)

DJUNA

기타등등

1. 이 작품은 에제키엘로 출연한 프란시스코 라발의 마지막 영화입니다. 그에게 헌정되었죠.

2. 마카레나 고메스는 스페인 버전 바바라 스틸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