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우메 발라게로 Jaume Balagueró

주연
안나 파퀸....레지나
Anna Paquin....Regina
레나 올린....메리
Lena Olin....Mary
이안 글렌....마크
Iain Glen....Mark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알베르트
Giancarlo Giannini....Albert
펠레 마르티네스....카를로스
Fele Martínez....Carlos
스티븐 엔퀴스트....폴
Stephan Enquist....Paul
페르민 레익사츠....빌라로보스
Fermín Reixach....Villalobos

1.

레지나

하우메 발라게로의 [다크니스]는 계획 단계부터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디 아더스]와 비교되었던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두 스페인 공포 영화 장르의 젊은 스타들이 비슷한 시기에 '귀신 들린 집'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영어 영화를 만들고 있었으니 그 비교는 당연한 것이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메나바르의 [디 아더스]는 성공작이었습니다. 기존 장르의 벽돌들을 교활하게 재활용하면서도 자신의 느낌을 놓치지 않은 세련된 장르물이었죠. 할리우드 시스템과의 타협도 적정선에서 이루어졌고 영어권 배우들의 기용도 훌륭했고요.

하지만 발라게로의 [다크니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봐도 이 영화는 뭔가 부족해요.

2.

[다크니스]는 발라게로의 전작인 [네임리스]처럼 비밀 집단의 음모에 의해 살해당한 어린아이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 유일한 생존자인 소년이 발견되었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저택에 한 미국인 가족이 이사옵니다. 네, 이 영화의 무대는 스페인입니다.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구사하고 신문도 영어로 찍히는 스페인이지요. :-) 6, 70년대에 나왔던 그 국제적인 유럽 영화들이 떠오르더군요.

영화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이야기 스타일로 진행됩니다. 배선이 멀쩡한데도 계속 전기가 나가고, 집 안의 물건들이 이유도 없이 움직이며, 사진에는 이상한 아이들의 모습이 찍히며, 사람들은 조금씩 미쳐갑니다. 물론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는 몇 십 년 전 이 저택에서 일어났던 집단 살인이 버티고 서 있었죠. 앞으로 일어날 개기 일식 역시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고요.

영화는 전체적으로 암담합니다. 전작 [네임리스]에서 보였던 그 사디스틱한 느낌이 이 영화에도 묻어 있어요. 관객들이 가장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을 매정하게 끊으며 주인공들을 불쾌한 결말로 집어 던지는 거죠. 과연 이게 이 사람 취향인지, 램지 캠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찍을 때 배운 건지 모르겠군요.

그 암담함을 극대화시키는 건 어둠이라는 소재입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악당은 어둠 자체입니다. 개기 일식이라는 이벤트 역시 그에 대한 (뻔한) 상징이죠. 종종 영화는 어둠을 칼이나 전기톱처럼 이용하며 희생자들을 학살합니다.

3.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발라게로가 소재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죠.

[네임리스]에서도 지적되었던 각본의 문제는 [다크니스]에서 더 심각합니다. 진실의 추적 과정이 드라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디 아더스]와는 달리, [다크니스]는 수사물과 드라마가 따로 놉니다. 추적 과정 자체도 재미가 없는 편이고 드러난 진상도 뻔한 편이고요.

각본은 전체적으로 산만합니다. 각본 단계에서부터 치밀하기 짝이 없는 아메나바르와는 달리 발라게로는 여전히 스토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합니다. 애당초부터 그렇게 독창적이지도 않은 소재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죠. 그 때문에 감독 통제하에 제대로 압축해서 다루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인용과 표절이 심각하게 드러납니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거의 [샤이닝]의 표절처럼 보이는 게 대표적인 예죠. '무서운 것은 어둠'이라는 아이디어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도 영화가 너무 산만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이 아이디어가 제대로 쓰이기 시작할 때는 아직 극적 기반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모든 게 아주 어설프게 보여요.

다국적 스타 캐스팅도 효율적으로 사용된 편은 아닙니다. 좋은 배우들이 가득 하지만 이들의 최선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앙상블을 연출해내지도 못하죠. 이들의 연기는 종종 일관성과 에너지를 잃고 방황합니다. 특히 영어권 배우들 사이에 끼인 펠레 마르티네스는 길잃은 어린 아이처럼 어색해요.

슬프게도 발라게로는 전작을 인상적으로 만들었던 분명한 스타일 역시 보여주지 못합니다.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드문드문 섬으로만 존재할 뿐 일관된 흐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죠.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다크니스]의 가장 큰 문제는 서툰 영화라는 것입니다. 아직 발라게로에겐 이렇게 큰 다국적 프로젝트가 무리였던 걸까요? 이런 영화를 만들기 전에 내공을 조금 더 쌓아야했던 걸까요? 이유가 무엇이건 발라게로가 첫 영화에서 쌓은 명성을 지키려면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03/04/07)

DJUNA

기타등등

나중에 이 영화를, 역시 어둠 자체를 악당으로 다룬 [다크니스 폴즈]와 비교해 감상할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