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클로드 밀레 Claude Miller

주연
미셸 세로....로이
Michel Serrault....L'Oeil
이자벨 아자니....카트린느 레이리스
Isabelle Adjani....Catherine Leiris
기 마르샹....창백한 남자
Guy Marchand....l'homme pâle
스테판느 오드랑....회색 옷을 입은 여자
Stéphane Audran....la dame grise
쥬느비에브 파즈....슈미트-볼랑제 부인
Geneviève Page....Mme. Schmitt-Boulanger
사미 프레이....랄프
Samy Frey....Ralph
마샤 메릴....마들린느
Macha Méril....Madeleine
도미니크 프로....베티
Dominique Frot....Betty
이자벨 오....코라
Isabelle Ho....Cora

카트린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루스 랜들, 코널 울리치, 샬롯 암스트롱, 엘러리 퀸, 니콜라스 블레이크, 찰스 윌리엄즈, 데이빗 구디스... 프랑스 영화사에서 이 사람들의 이름을 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여러분은 가장 흥미진진한 프랑스 스릴러들을 잃게 될 겁니다. 누벨 바그 이후 프랑스 감독들은 정말 끝도 없이 영미권 추리작가들의 작품들을 빌려왔으니까요. 자국 추리 작가들 중 같은 대접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브왈로-나르스자크? 조르주 시므농? 이 사람들의 작품들도 자주 각색되긴 했고 종종 아주 좋은 영화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영미권 경쟁자들처럼 '오퇴르' 아저씨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화는 은근히 영미권의 영향에 푹 절어있단 말이에요.

클로드 밀레의 [데들리 런]의 원작 역시 미국 작가 마크 벰의 추리 소설 [아이 오브 비홀더]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기타등등란에서 언급했고 스티븐 엘리엇의 동명 영화에 대해서도 전에 다루었으니 줄거리에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여자 연쇄 살인범과 수호 천사처럼 그녀의 뒤를 쫓는 사립탐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이미 아실테니까요.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데들리 런]은 비교적 충실하게 원작의 기본 개념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 로이 (L'Oeil)는 중년의 사립 탐정이고 여자 주인공 카트린느는 바이섹슈얼 연쇄 살인범입니다. 로이는 카트린느를 얼굴도 모르는 자기의 어린 딸과 동일시하며 그녀를 보호해주고요. 클로드 밀레는 스티븐 엘리엇이 삭제했던 이야기들도 그대로 다룹니다. 카트린느의 유일한 여자 희생자 코라나 후반부에서 카트린느의 공범자이고 연인이었던 베티의 이야기가 그렇죠.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원작의 다라스 박사에 해당되는 캐릭터를 삭제해버렸습니다. 그 대신 그 빈 자리를 스테판느 오드랑과 기 마르샹이 연기하는 두 명의 남녀 협박범으로 대체했지요.

이 각색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분위기입니다. 벰의 [아이 오브 비홀더]는 침침하고 암담한 소설이었습니다. 스티븐 엘리엇의 영화도 다를 게 없었고요. 하지만 클로드 밀레는 [데들리 런]을 위트 넘치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빠르고 경쾌하며 굉장히 시니컬합니다.

주인공들에 푹 빠져 있는 소설에서와는 달리 클로드 밀레는 냉정한 외부인의 관점에서 두 주인공들을 관찰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서 진짜 관찰의 대상은 염탐꾼 로이입니다. 밀레는 카트린느에 대해선 깊이 이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카트린느는 [라 팔로마]와 배, 시니어 서비스 담배를 좋아하는 아름다운 살인범입니다. 그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밀레가 진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치광이처럼 이 여자의 뒤를 쫓는 초라한 변태 아저씨 로이입니다.

로이

밀레는 자기가 다루는 주인공을 거창하게 묘사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로이는 필립 말로식 똥폼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평범한 외모의 괴짜 아저씨에 불과합니다. 툭하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그의 독백 버릇은 미국 사립탐정물에 대한 농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그는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로이는 더욱 공감가는 인물이 됩니다. 사립탐정식 똥폼이 없어지고 실수투성이 보통 남자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의 내면이 더욱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이죠. 여전히 밀레는 그의 집착을 공유하길 거부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그런 냉정한 객관성이 밀레의 의도였을테니까요.

영화는 미셸 세로와 이자벨 아자니라는 두 훌륭한 배우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아자니는 언제나처럼 샐쭉하게 아름답고 유혹적이며, 세로는 평범한 외모 속에 숨겨진 우스꽝스러운 변태성을 우아한 유머를 섞어 묘사해냅니다. 잠시 등장하는 스테판느 오드랑과 기 마르샹도 지적해야겠군요. [데들리 런]은 아마 오드랑이 가장 흉하게 나오는 영화 중 하나일 거예요. 인상적이긴 했지만... 전 오드랑이 다라스 박사 캐릭터로 나오길 바랐답니다.

벰의 원작과 엘리엇의 영화에 스며있는 컴컴한 멜랑콜리를 즐기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데들리 런]이 맑고 또렷한 어조로 들려주는 연쇄 살인의 이야기의 우아한 감흥은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03/05/21)

DJUNA

기타등등

MBC Movies에서 방영한 버전은 120분보다 한참 짧더군요. 많이 잘렸나 봅니다. 언젠가 원래 버전을 볼 수 있게 되면 반영하겠습니다. 올해가 꼭 20주년 되는 해인데 혹시 기념 DVD라도 안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