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레니 할린 Renny Harlin

주연
샤프론 버로우즈....수잔 맥클리스터 박사
Saffron Burrows....Dr. Susan McAlester
토마스 제인....카터 블레이크
Thomas Jane....Carter Blake
사무엘 L. 잭슨....러셀 프랭클린
Samuel L. Jackson....Russell Franklin
LL 쿨 J....프리처
LL Cool J....Preacher
재클린 맥켄지....재니스 히긴즈
Jacqueline McKenzie....Janice Higgins
마이클 라파포드....톰 스코긴즈
Michael Rapaport....Tom Scoggins
스텔란 스카르스가드....짐 위틀록
Stellan Skarsgård....Jim Whitlock
아이다 터투로....브렌다 컨즈
Aida Turturro....Brenda Kerns

[죠스]는 훌륭한 영화였지만 성공적인 장르의 문을 여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 자체로 너무 완벽했고 잠재 장르의 가능성을 모조리 써 버렸기 때문에 [죠스]의 뒤를 잇는 상어 영화들은 모두 [죠스]의 흐릿한 모사품에 불과했지요.

그렇다면 성공적인 상어 영화는 [죠스]로 끝났는가? 글쎄요. 그건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습니다. 상어를 다루는 방법이 꼭 [죠스]를 흉내내는 길밖에 없는 건 아닐테니까요. [죠스]의 흉내를 내더라도 아주 잘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을런지도 모르고요(전 부정적입니다만.)

[딥 블루 씨]는 어떨까요? 에헴... 영리하게도(?) 레니 할린은 [죠스]의 공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딥 블루 씨]가 따르고 있는 것은, 진부하지만 적어도 안정된 진부함을 유지하고 있는 '밀실 안의 괴물' 공식입니다. 갇힌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쫓기고 그러는 동안 한 명씩 죽어가는 거죠. 뻔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장르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엉터리 상어 영화보다는 훨씬 잘 된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이런 이야기입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만드는 '미친 과학자' 맥클리스터 박사는 믿을 수 없이 허술해 보이는 해상 연구소에서 상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상어 뇌에서 뽑아낼 단백질 양을 늘리기 위해 맥클리스터 박사는 유전자 조작으로 상어의 뇌를 다섯 배로 늘립니다. 똑똑해진 상어들은 헬리콥터 사고로 박살이 난 해상 기지에서 날뛰면서 한 명씩 사람들을 물어 죽이네요.

상어 이야기가 나오니 '죠스'를 가장 많이 베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영화가 가장 많이 베낀 것은 [쥬라기 공원]입니다. 어디로 가건 스필버그의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쥬라기 공원] 흉내는 [죠스] 흉내보다 영리합니다. 그리고 [딥 블루 씨]는 이 제한된 규칙 안에서 꽤 영리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서스펜스는 적당한 곳에 배치되어 있고 잔인함이나 공포도 적정 수준으로 조절된 채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캐릭터들의 행동도 꽤 그럴싸합니다.

특수 효과도 그럴싸합니다. 이미 상어나 돌고래와 같은 동물을 만드는 애니매트로닉스 기술은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속도감은 조금 작위적인 듯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대충 잊혀지고 또 저같이 예민한 관객들의 신경을 안정시키기도 합니다.

규칙은 철저하게 지켜집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가 '헐리웃 살생부'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아무리 호러 영화라고 해도 아무나 막 죽여서는 안됩니다. 관객들의 반응과 충격 효과를 고려해서 죽여야죠.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엉성해집니다.

[딥 블루 씨]는 엄격하게 '살생유택'의 논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단지 그게 90년대 식으로 살짝 업데이트되었을 뿐인데, 그것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규칙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영화에서는 흑인 배우들의 목숨은 훨씬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아니지요. 특히 '난 죽었다. 흑인들은 요럴 때 꼭 죽더라' 같은 대사가 나오는 영화라면요. 다른 사람들의 죽음도 책임과 윤리, 육체적 무능함 따위에 따라 규칙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순서까지도 규칙을 따릅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장르 규칙의 진부함을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건 나름대로 필요한 것이며 사실 대부분 돌처럼 단단하고 효율적인 것들입니다. 실패한 장르 영화들은 클리셰를 따랐기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니라 클리셰를 서투르게 따랐기 때문에 망합니다.

그렇다면 [딥 블루 씨]의 성실한 규칙 사용은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딥 블루 씨]는 진부함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영화의 완성도는 [클리프 행어]나 [롱키스 굿나잇]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이군요. 몇몇 불평은 개인적입니다. 전 이 영화에 나오는 터프한 주인공의 스테레오 타입이 짜증나고 과학기술자(특히 여성)들에 대한 뻔한 편견에 화가 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영화가 부족한 것은 모험 정신입니다.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규칙을 잘 따르며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규칙 안에만 남아 있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게 있어야죠. '약에 쓰려고 뒤지면' 하나쯤 독창적인 게 나와야 하는 겁니다. [딥 블루 씨]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99/09/16)

DJUNA

기타등등

1. 뇌를 다섯배로 늘렸다고 상어가 영화 속에서처럼 똑똑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커봤자 여전히 생선 머리에 불과해요. 중요한 건 부피가 아니라 '질'입니다. 수억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를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2. 레니 할린의 특기인 악당 눈 찌르기가 여기에도 나오는군요. 방명록에서 어떤 분이 지적해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