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소머즈 Stephen Sommers

주연
트리트 윌리엄즈....피네건
Treat Williams....Finnegan
팜케 얀센....트릴리언
Famke Janssen....Trillian
안소니 힐드....캔튼
Anthony Heald....Canton
케빈 J. 오코너....팬투치
Kevin J. O'Connor....Pantucci
웨스 스투디....하노버
Wes Studi....Hanover
데릭 오코너....선장
Derrick O'Connor....Captain
제이슨 플레밍....멀리건
Jason Flemyng....Mulligan
클리프 커티스....마물리
Cliff Curtis....Mamooli
클리프턴 파웰....메이슨
Clifton Powell....Mason
트레버 고다드....T. 레이
Trevor Goddard....T. Ray
지몬 훈수....비보
Djimon Hounsou....Vivo
우나 데이먼....레일라
Una Damon....Leila

[딥 라이징]은 독창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심지어 그 진부함마저도 진부하지요. 영화는 이미 고정된 '밀실 속의 괴물' 클리셰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반복하고 있는데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던 비슷한 영화들에서 사용된 변변치 않은 아이디어들까지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아나콘다] 심지어 [타이타닉]까지... 어느 게 먼저 기획되고 어느 게 먼저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러 영화들이 한 우물을 판다는 건, 그네들의 밑천이 떨어졌다는 증거일 뿐이니까.

그나마 독립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끼워넣은 차이점은? 흠, 영화는 메리 셀레스트 호 이야기를 발판으로 삼아 스토리를 시작합니다. '남지나 해에서 수많은 배들이 이유도 없이 실종되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라는 무시무시한 자막의 뒤를 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험상궂은 승객들을 태운 배가 남지나 해를 질주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정체불명의 재난으로 승객 모두가 실종된 거대한 유람선에 오릅니다.

[스포일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 재난의 주인공은 심해에서 올라온 거대한 연충입니다. 이 괴물은 끝에 입이 달린 긴 다리를 배 이곳저곳에 쑤셔 박으면서 사람들을 빨아먹고 뼈만 뱉어내죠.

별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요. 메리 셀레스트 아이디어를 우려먹으려는 작가들이 가장 자주 써먹는 트릭이니까요. 이미 수십년 전에 윌리엄 오터슨이라는 작가가 [요리사의 난로불]이라는 단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끌어들인 적 있습니다. 이 단편의 괴물은 문어였지만요.

그 동안 세월이 흘렀으니 괴물은 더욱 강력하고 무시무시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럴싸하다는 점에서는 영 엉망이군요. 도대체 이 괴물의 다리는 얼마나 길고 많길래 배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서 빨아먹을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어떻게 그 깊숙한 심해에서 수압과 수온의 방벽을 뚫고 수면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요?

알게 뭐예요. 영화는 그런 시시한 디테일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네들이 하는 것은 요란한 식인 괴물을 등장시켜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의 혼줄을 빼놓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꽤 그럴싸하게 해냅니다. [딥 라이징]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클리셰 잡탕이며 끔찍할 정도로 B급 영화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유머들과 캐릭터들, 그리고 종종 괜찮게 사용되는 액션 때문에 적어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중간 수준의 특수 효과 때문에 영화가 무척 싸게 보입니다. 꼭 그네들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원래 요새 디지탈 특수 효과의 수준이 그 정도니까. 그러나 영화 속의 괴물은 너무나도 CG 티가 나서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 꿈틀거리는 모양이 [아나콘다]의 뱀과 너무 닮기도 했고요. 유람선이 나오는 장면들도 비슷한 시기에 나온 [타이타닉]과 비교되어서 너무 초라해보이는군요.

비싼 배우도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원래 좀 싼 사람들이니까 괜찮습니다. 트리트 윌리엄즈는 결코 메이저 영화의 주연은 못할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어울립니다. 팬투치 역의 케빈 J. 오코너 역시 적당히 기회주의적이고 희극적인 조역을 매끄럽게 해내고요. 고급 소매치기 트릴리언을 연기한 팜케 얀센도 유쾌합니다. 얀센의 미모 때문에 지독하게 B급으로 보이는 영화가 약간 비싸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요.

진부하고 머리 쓴 흔적이 전혀 없는 영화지만, 적어도 [딥 라이징]은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던 [바이러스]보다는 훨씬 시간 보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이 정도면 꽤 후한 칭찬을 해준 듯 싶군요. (99/09/28)

DJUNA

기타등등

얀센은 처음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오다가 나중에 남자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입은 하얀 셔츠(위의 사진을 보세요!)는 그 요란한 액션을 겪은 뒤에도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