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파커 John Parker

주연
아드리안 바렛....부랑아
Adrienne Barrett....The Gamine
브루노 비소타....부자
Bruno VeSota....Rich Man
벤 로즈먼....아버지/사복 경찰
Ben Roseman....Father/Plainclothes Cop
루실 홀런드....어머니
Lucille Howland....Mother
에드 힝클....집사
Ed Hinkle....Butler

1.

아버지의 묘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 골드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아드리안 바렛이라는 비서가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답니다. 바렛은 직장 상사인 존 파커에게 그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파커는 그 꿈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래는 10분 안팎의 단편 영화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어쩌다보니 한시간 가까이 되는 장편 영화로 둔갑하고 말았죠. 영화 제목은 [디멘시아]였습니다.

물론 존 파커가 할리우드의 거물 따위는 아니었으니 [디멘시아]는 극저예산 영화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커는 엄마한테서 돈을 빌려 제작비를 충당했고 꿈을 꾼 당사자인 바렛에게 주연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디멘시아]는 운 나쁜 영화였습니다. 일단 당시 검열을 통과하기엔 영화가 너무 자극적이었지요. 수많은 우여 곡절을 겪은 영화는 몇 년 뒤에야 몇몇 장면들이 잘려나가고 아무 쓸모도 없는 나레이션이 덧붙여진 뒤, [공포의 딸]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간신히 대중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반 관객들이 볼 수 있었던 영화들도 이 버전이었지요. 다행히도 얼마 전에 키노 비디오에서 [디멘시아]의 원래 버전과 [공포의 딸]을 모두 수록한 DVD로 내놓아서 요새 관객들도 이 영화의 원래 꼴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디멘시아]는 여러모로 특이한 영화입니다. 그처럼 영화를 팔기 힘들었던 게 이해가 가요. 일단 이 영화에는 대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대로 된 일관성 있는 줄거리 역시 없고요. 영화는 전적으로 꿈의 논리를 따르고 종종 관객들 눈 앞에 이성적인 이해가 절대로 불가능한 장면들을 툭툭 던집니다.

영화는 '부랑아'라고 이름을 붙인 한 젊은 여자가 캘리포니아 베니스의 컴컴한 거리를 누비면서 벌이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확한 줄거리를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주정뱅이한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뚱보 야타족이 사는 펜트 하우스에 올라가기도 하고, 살인도 한 건 저지르고, 시체 손도 한 번 자르며, 지하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 정도는 이야기해드릴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스타일과 분위기인데... 이렇게 설명드리면 될 것 같군요. 대충 마야 데렌 풍의 영화를 데렌보다 재능이 떨어지고 허세가 강한 초보 감독이 20세기초 전위 영화와 [악의 손길]을 섞은 듯한 스타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정도면 대충 짐작이 되지요?

3.

일반적으로 [디멘시아/공포의 딸]은 에드 우드의 영화들처럼 50년대 캠프 클래식의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평가 자체를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어요. 정말 캠피한 구석이 가득한 영화니까요. 싸구려 정신분석학으로 흠뻑 젖은 분위기, 감독의 능력을 넘어선 '예술 영화'적 느낌, 배우들의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연기... 물론 영화 전체를 통해 유령처럼 흐느끼는 마니 닉슨의 [트왈라이트 존] 식 노래도 잊을 수 없지요. 여기에 에드 맥마혼의 덜떨어진 나레이션이 결합하면 결과는 정말 유쾌합니다.

그러나 후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캠피한 느낌을 부당하게 강조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대부분 책임을 [공포의 딸]에게 돌려야 하겠지요. 원작인 [디멘시아]는 결코 [공포의 딸]만큼 우스꽝스러운 영화가 아닙니다. 기회주의적이고 잘난 척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못만든 영화는 아니며 결정적으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일단 맥마혼의 나레이션만 지워도 영화의 느낌은 살아납니다. 엉터리 정신분석 강좌처럼 흘러가던 영화가 무시무시한 50년대식 악몽으로 뒤바뀌거든요. 파커가 사용한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이 그렇게 독창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에드 우드의 단골 촬영감독이었던 윌리엄 C. 톰슨이 촬영한 컴컴한 화면 속에서 이런 것들이 영화적으로 비틀리기 시작하면, 이 아이디어들은 캠피한 우스꽝스러움을 넘어섭니다. 몇몇 장면들은 예상외로 근사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부자 야타족 아저씨가 튀긴 닭을 먹는 장면을 삽입하면서 그 남자에 대한 주인공의 혐오감을 표현하는 장면이나, 그 이후 등장하는 추락 장면, 가면을 쓰고 시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시체의 손을 잘라내는 주인공의 모습 같은 것들을 보세요.

아까는 살짝 놀려댔지만 조지 안세일의 음악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가장 비싼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 음악의 괴상한 초현실주의는 진 무어가 작곡한 [영혼의 카니발]의 괴상함과 거의 맞먹습니다. 훨씬 비싸게 들리긴 하지만요.

전 [디멘시아]가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산전수전을 겪은 현대 관객들에게는 조금 뻔해 보일 수도 있답니다. 정신분석학의 약발이 상당히 닳은 요샌 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 작품처럼 도전적인 인디 영화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01/06/25)

DJUNA

기타등등

종종 이 영화는 [악의 손길]의 전조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된 캘리포니아의 베니스가 [악의 손길]의 로케이션 장소였으며, 필름 느와르식 컴컴한 분위기가 여러 모로 유사한데다가, 결정적으로 뚱보 야타족 아저씨를 연기한 브루노 비소타가 뚱뚱하던 시절의 오슨 웰즈와 이상할 정도로 닮았거든요. 영화를 보다보면 거의 초자연적 현상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