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용기

주연
이범수....홍무혁
김수로....이정민
성동일....송재필
이시영....송연화
박인환....홍만석
김자옥....석명애
장기범....홍찬혁
조희봉....박형사
김혁....정실장

연화와 무혁

정용기는 도둑들이 좋은가 봅니다. 그의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주인공들은 일제시대 때 활약하던 고급 사기꾼과 보석 도둑이었죠. 그의 최신작 [홍길동의 후예]의 주인공들은 부자 악당들의 재산을 터는 의적들입니다. 하긴 세상이 수상하면 사람들은 법의 울타리 밖에서 영웅들을 찾기 마련입니다. 요새 저런 인간들이 돌아다니면 오래 전에 인터넷 스타가 되었을 걸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허균 소설 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던 실제 홍길동의 후손들입니다. 아버지인 홍만석이 17대손이고 아들 홍무혁이 18대 손인 모양입니다. 여기에 몇 년째 홍만석의 아내 석명애가 가담하고 있었고요. 이들은 평상시엔 대학교수나 고등학교 음악교사 같은 멀쩡한 직업에 종사하다 짬이 나면 가업에 종사합니다.

이들 가족은 주로 한 악당만 골라서 몇 년 동안 지지고 볶는 스타일인데, 최근 그들의 표적이 된 사람은 이정민이라는 악당입니다. 실체 없는 경제 전문가의 이미지를 을궈먹고 있지만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악당인 그를 어디선가 본 느낌인데 그게 어딘지요. 하여간 그는 낮에는 뭔가 번지르르한 것을 짓겠다며 철거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밤에는 일장기가 등에 박힌 트레이닝 복을 입고 건담 수집에 몰두합니다. 참, 그의 금고 옆에 박정희 초상 사진이 떡 놓여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가요.

여기에 제3의 축이 등장하는데, 그는 이정민의 비리 사실을 밝혀 감옥에 넣겠다고 맹세한 검사 송재필입니다. 근데 알고 봤더니 송재필의 동생 송연화는 지난 3년 간 홍무혁과 사귀었던 여자친구입니다. 홍무혁은 송재필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그와 협조해 이정민을 감옥 안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고전적인 구조죠.

홍길동 후손들의 이야기에서 엄청 멋있는 두뇌 대결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들의 계획은 단순하기 짝이 없고 지능범의 매력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이정민에게 엄청난 대악당의 포스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들의 대결은 좀 노는 애들의 패싸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송검사가 가담해도 이야기는 특별히 재미있어지지 않아요. 특히 송검사가 하는 행동 일부는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액션은 괜찮은 부분이 좀 있습니다. 홍무혁이 납치당한 여자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야마카시를 하는 장면은 스턴트의 질이 좋고 속도감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꽤 공을 들인 것 같은 후반부의 액션은 심심하군요. 결국 이정민이 법과 홍길동 후예들의 심판을 받긴 하지만 별다른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 건 후반 액션이 길기만 하고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남은 건 코미디입니다. 홍길동 가족들에게 주어진 코미디는 도둑들이 평범한 가족인 척 행동하면서 발생하는 기초적인 것으로, 시작부터 진부한데다가 아이디어가 부족합니다. 이정민은 조금 컬러풀한 악당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를 보고 웃을 생각은 안 나요. 송재필 검사에게 주어진 농담은 대부분 천박하고 단선적입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건 모두 거의 배우의 개인기에 의지하고 있죠. 예상 외로 다소 정신나간 여자친구로 나오는 이시영의 코미디가 강한데, 영화는 이 캐릭터에게 할 일을 별로 안 줍니다. 왜 그럭저럭 잘 기능하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서 이렇게 낭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사람은 전작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도 그랬죠. (09/11/16)

DJUNA

기타등등

늘 하는 말인데, 시사회상에서 자신의 종교나 신을 언급하는 것은 세속국가를 사는 사람들의 예의가 아닙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 목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말이죠.